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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갖는다는 것은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

by 신읻작가

점호()는 (주로 군대, 경찰 등에서) 영내 거주 인원의 상태를 점검하는 행사를 말한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9일 오전 11_54_45.png 서울의 '방패' 서울기동대 ㅎㅎㅎ;


저는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하였습니다.


"에이, 의경 놀다 오는 거지 뭐"라는 얘기에 발끈하는 바로 '서울기동대' 출신 아저씨죠. 그래서였을까요. 단어 뜻에서조차 무게감이 느껴지던 그 시절 "점호 끝나고 나한테 와"라는 한마디에 심장이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 자대 배치를 받으면 똑똑한 사람도 순식간에 바보가 됩니다. 낯선 환경, 하늘(?)과 같은 선임, 불안정한 심리 상태.. 모든 것이 섞이고 섞여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죠.


자대 배치 후 제게 주어진 첫 임무는 [기수표]와 [무전음어표]를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 넘게 함께할 중대원들의 기수를 외우고 근무지에서 사용할 음어표를 외우는 것은 의경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기본이었기에, 빠르게 외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죠.




하지만 그게 쉽나요. 어색하고 낯선 단어, 이등병의 빠릿빠릿함이 요구되는 하루하루, 그리고 기동대 특유의 훈련까지 온전히 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 라떼는 화장실에서 외웠다는 선임들도 많았지만...ㅎ)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한 선임이 "점호 끝나고 나한테 와"라고 툭 말했습니다.


'아, 이게 형들에게 듣던 점호 후 갈굼(?)인가'라고 생각하며 생활실로 들어갔고, 그 선임은 저를 생활실 가장 뒷칸으로 데려가 간이 커튼을 친 뒤 이렇게 말했죠.


"이거 이거 물어볼 테니깐 이것만 잘 외워서 1시간 뒤에 와" 저는 '잉?'이라는 마음과 함께, 그는 무전 음어표 중 몇 개를 콕 집어 알려줬고 저는 기출 예상 문제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이 지나고, 그 선임은 생활실 앞에서 저희 동기를 불러 세웠습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무전 음어 암기 테스트가 시작됐습니다. 막내들이라 더더욱 예쁨(?)을 받는 상황이라, 소대원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구경하고 시작했죠.


하필 가장 왼편에 서는 바람에 저부터 테스트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1시간 전에 알려준 음어들만 쏙쏙 골라서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3문제 정도 대답했을 때 "오, 얘는 에이스네?"그 한마디와 함께 저는 '에이스'로 불리며 첫 소대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그 선임의 전역을 하루 앞둔 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그때 제게 왜 '에이스'라는 칭호를 주셨습니까?"


선임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혼자 경찰 버스 외벽을 죽어라고 닦는다고 손이 얼어서 터지는 모습을 보며 '아 쟤는 키울만하겠네'라고 생각했고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이 조직원으로서 자신의 할 일을 찾아 했다는 것이 예쁘게 보여서, 다른 선임들과 논의하여 결정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의도치 않고 한 어떤 행동은, 때때로 다른 이들에게 관심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한 사람을 다르게 보게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남는 좋은 이야기로 남기도 하죠.


평소 관심을 갖고 지켜본 누군가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관심은, 결국 표현하지 않으면 그냥 사라지는 법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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