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사람

by 오 지영

나이가 드니 새것보다 헌 것이 좋습니다. 사용해오던 것을 다 쓰면 굳이 같은 것으로 하나 더 사고, 오래 들고 다니던 천가방은 다 해졌는데도 버리지 못한 채 방에 걸어 놓았습니다. 하얀색 운동화는 이제 나의 발 모양 같아서, 옷에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신고 나가는 신발이 되었고, 손가락에 낀 가락지를 빼면 그 흔적이 남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LP보다 손 때 묻은 LP를 사기 위해 굳이 동묘에 들르고, 오래전 여행에서 사 온 컵은 이가 나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끔은 두렵습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 빠져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사람을 앞에 두고 또 진땀을 뺄까. 새것을 손에 쥐어줘도 헌 것이 좋다 하는 못난이가 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나는 자꾸만 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낡고 오래된 사람.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나를 신어줬으면, 자꾸 나를 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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