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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Apr 02. 2024

10. 짬뽕소고기샤브전골, 아들 부부와 미리 축하한 아


  K의 아내가 자신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내 생일날 애들 오라고 해서 뭐 해줄 거야?”

  K가 ‘알면서 왜 묻지?’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짬뽕소고기전골 해주기로 했잖아.”

  그제서야 아내가 본론을 꺼냈다.

  “자기가 아들한테 문자 보내. 내가 보낼까?”

  K는 자신이 보내겠다며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들~ 25일 엄마 생일에 집에서 <짬뽕베이스의 소고기샤브전골> 할까 하는데 어떠니?

  잠시 뒤 아들로부터 답신이 왔다.

  -너무 좋은뎅 내가 회식이라... 혹시 조금 일찍 23일은 어려우려나용?ㅎㅎ

  “한결이가 25일에 회식이라는데?”

  K의 말에 아내가 서운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걔는 엄마 생일날 회식을 잡았대?”

  K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뭐 어때? 23일 날 오라고 하면 되지.”

  마음이 상한 K의 아내는 “엄마 생일날 회식을 잡는 아들이 어딨냐”며 계속 투덜댔다. 아내의 마음이 풀리지 않는 걸 본 K는 뒤늦게 아내의 감정에 공감부터 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불찰을 깨달았다.

  “그러게 말이야! 엄마 생일날 회식이 잡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았어야지! 이거 안 되겠네.”
   K의 아내는 “괜히 오버하지 말라”면서도 마음이 좀 풀린 표정으로 말했다.

  “병원 전체 회식이 잡혔나 보지. 술 회식을 그렇게 잡았겠어.”

  심드렁하게 말하고 난 아내는 보고 있던 여행 예능에 다시 빠져들었다.     

  잠시 뒤 K가 아들에게 카톡을 슬쩍 보냈다.

  -오케이~ 근데 엄마 생일날 회식이 잡혔남?

  -넹 전체 회식이 잡혀버렸네. 주말엔 또 교육이구. 회식 가지 말까?ㅋㅋ

  역시 전체 회식이 잡힌 것이었다. K가 카톡을 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한결이 전체 회식 잡힌 거 맞네!”

  “그럴 줄 알았어.”

  아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며 K가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녀~ 23일에 집으로 오셔^^ 주말마다 교육받느라 고생이 넘 많네!^^

  -아닙니당 ㅋㅋ 감사해용

  아들은 몇 주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8시간씩 물리치료 연수를 받고 있었다. 서진은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용인의 교육관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태워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참 살갑고 정다운 부부였다.          


  23일 저녁에 K는 마트에서 소고기와 배추, 팽이버섯, 호박 등 장을 봐왔다. 짬뽕소고기샤브전골은 한 달 전 호주에서 온 딸이 먹고 싶다고 하여 시도해 본 요리였다. 파기름과 고추기름을 내고 고추장과 간장으로 간한 짬뽕 육수에 배추와 버섯, 샤브 소고기를 넣고 푹 끓였더니 일반 소고기 전골보다 훨씬 뛰어난 맛이 났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K는 두 주 전엔 의왕으로 가서 어머니와 조카에게 짬뽕소고기샤브전골을 해드렸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입이 짧은 편이었던 조카까지 맛있게 먹는 걸 본 K는 자신의 메인메뉴에 짬뽕소고기전골을 새롭게 추가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만한 맛이 나지 않았다. 아내의 취향에 맞춰 고추장을 빼고 해물도 넣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아내가 소고기를 일찍 넣으면 고기가 질겨진다고 하여 맨 마지막에 넣은 영향도 있었다. 아들 부부가 조금 일찍 도착하여 전골을 푹 끓이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서진은 “어머니, 너무 추워요” 하고 엄살을 떨며 K의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시어머니를 스스럼없이 껴안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K는 마음이 뜨듯해지는 걸 느꼈다.

  “아버님, 제가 식탁 차릴까요?”

  팔을 걷고 다가온 서진에게 K가 말했다.

  “어 그래. 전골은 좀 더 끓여야 되거든. 밥 좀 퍼줄래?”

  압력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뒤적이며 서진은 K에게 회사 이야기를 재잘재잘 들려주었다. 공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곳으로 이사를 하게 돼서 동료들이 불만이 많다고 했다. 서진은 웹소설과 웹툰을 플랫폼에 올리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아버님, 다음 달에 나오는 책은 잘 마무리되셨어요?”

  “응. 어제 최종 수정 원고 넘겼어. 마지막 오케이가 나기까지 쉽지 않더라구.”

  서진이 다음 책은 무엇으로 준비하느냐고 물었다. 아내의 동태를 살피며 K가 대답했다.

  “서진이 너희 회사에 웹소설로 올려보는 게 어떨까 싶어. 제목은… 하하….”

  K가 주저하자 서진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버님, 제목이 뭔데요?”

  아내가 거실로 가는 걸 보면서 K가 말했다.

  “제목은 ‘친정엄마같은 시아버지 되기’야. 서진아, 대박날 것 같지 않니?”

  “우와! 제목이 너무 괜찮은 것 같아요, 아버님! 호호호.”

  함께 웃고 있던 서진과 K 곁으로 어느새 다가온 아내가 따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가족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거실에 있던 아들도 “아빠, 엄마한테 한 약속 지켜야지”라며 거들었다. K는 쌍심지를 켜고 있는 아내에게 “알았어, 알았어”라고 얼버무리며 전골냄비를 식탁으로 들고 갔다.     


  잠시 뒤 네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아 K 아내의 생일 축하 음식을 먹었다. 아들과 서진이 전골 국물을 떠먹으며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아들 부부의 입에서 찐 감탄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K는 그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어머니 댁에서 먹었던 것만큼 진한 국물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해물과 소고기를 한참 동안 푹 끓였고 배추, 버섯과 함께 어우러져 시원하고 진한 국물 맛이 났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K가 마지막에 물을 좀 더 부어 끓인 것도 패착 중 하나였다.

  그래도 소고기가 들어간 전골이었기에 나쁘진 않았다. K의 아내가 만들어 놓은 양념꽃게가 밥도둑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역시 며느리가 최고였다. 서진은 전골이 맛있다며 두 번이나 더 떠다 먹었다.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 서진은 언제나 요리한 사람에게 뿌듯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K는 서진을 보면 볼수록 어디서든 환영받고 사랑받을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식탁을 정리한 뒤 생일 케익을 준비했다. K와 서진이 촛불을 밝히는 동안 아들이 호주의 동생 부부와 영상으로 통화 연결을 했다. 영상 통화로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아내가 촛불을 껐다. 어수선한 상태에서 여럿이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기 말만 하는 웃기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들 : 예인아, 이제 끊을게.

  K : 왜? 벌써 끊으려고 그래?

  아내 : 서진이가 엄마 제주도 둘레길 걸을 때 신으라고 운동화 사왔어.

  사위 : 어머니, 제가 하는 업무가 이런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며 은결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왜 우리 남편 말 아무도 안 들어줘? 재민이 오빠 혼자 얘기하고 있잖아!”

  그 말에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위가 핸드폰 화면으로 자신의 업무 사이트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K 부부가 화면 속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사위에게 웃으며 사과를 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영상 통화를 마쳤다.     


  K에겐 짬뽕소고기샤브전골의 국물 맛이 살짝 부족했던 것 빼고 모든 것이 좋았다. 아들 부부가 돌아간 뒤 아내가 주방에 쌓인 그릇들을 보며 “당신 할 일이 또 남았네”라고 말했을 때도 그는 기분이 좋았다. 이 년 전 비폭력대화 연수 때 간접적으로 접했던 햇살 님의 시어머니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까닭이었다. 그녀는 딸 부부든 아들 부부든 자신의 집에 오면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게 하는 시어머니였다. 자식들에게 그런 홀가분한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을 K는 자신의 포지션으로 잡았다. 그는 그날도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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