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코 고야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19세기까지 디프테리아는 많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대표적인 급성 세균성 전염병이었다. 디프테리아균은 코와 목의 점막에 침투해 독소를 분비한다. 이 외독소의 배출에 따라 증상이 나타난다. 인후통과 열로 시작된 증상은 호흡 곤란을 거쳐 심하면 부정맥과 마비 등으로 사망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목구멍 안쪽에 껌 딱지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 위막이 형성된다. 디프테리아의 사망률을 5~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야의 작품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은 동명의 소설 제목에서 따 왔다. 소설 속 말썽꾸러기 하인은 장님인 주인의 요리 재료 중 소시지를 자기가 먹고는 비슷한 모양의 순무를 넣어 음식을 만들었다. 눈 가리고 아웅, 즉 고식지계다. 이에 화난 주인은 아이의 입속을 벌려 소년이 소시지를 먹었는지 냄새로 확인하고 있다. 의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아이가 주인의 다리 사이에 잡혀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다.
이 작품 속 어른과 아이의 모습으로 이 작품에는 <디프테리아>라는 또 다른 제목이 붙어 다닌다. 작품 속 소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불편한 모습이다. 이는 마치 디프테리아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주인의 모습은 디프테리아에 걸린 아이의 목에 보이는 위막을 제거하려는 동작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당시 의학 수준과 치료 도구를 생각하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위막을 제거하려 했다면 목구멍이 잘 보이도록 목을 뒤로 더 젖혀야 한다.
이 위험천만한 디프테리아의 종식을 알린 것은 1890년 에밀 베링과 그의 동료가 만든 디프테리아 항독소다. 항독소 치료는 19세기 가장 중요한 급성 전염병의 의학적 치료로 의학 학술지 란셋은 평가했다. 그 후 예방 백신과 항생제의 발전으로 디프테리아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전염병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작품에 감정이입은 잘 되지 않는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폭격으로 부상을 입은 아버지와 그 옆에 심폐소생술을 받는 소녀의 사진이 외신으로 퍼졌다. 결국 그 소녀는 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어떤 감정을 투영해야 하는 것일까? 내겐 그런 깊은 슬픔의 감정이 없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Lazarillo de Tormes)>
예술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년~1828년)
국적: 스페인
제작 시기: 1808년~1812년
크기: 80×65㎝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개인 소장(스페인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