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새내기 시절부터 교수님과 선배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 있었다. “너는 교사가 될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행동과 마음가짐을 늘 교사라는 기준에 맞춰야 했다. 그 시절 한 교수님은 여선배가 화장하거나 짧은 치마만 입어도 버럭 화를 내셨다. 그 자리에서 당장 화장을 지워야 했고, 꾸중을 들어야 했다. 우리 과 선후배는 복도에서도 늘 중고등학교 학생처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실제 사람 크기로 등장한다. 쿠르베는 역사나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신이 아닌 눈앞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그렸다. 남루한 옷을 입은 돌 깨는 노인과 깬 돌을 나르는 젊은이는 지극히 아름다운 현실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등장하는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를 생각나게 한다. 그들은 거친 손으로 자기 삶을 이어가는 우리네 삶이다.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 중
러시아 우화를 재구성한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바보 이반』에서 바보 이반의 왕국에는 가장 중요한 철칙이 하나 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인 일하는 자들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일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먹고 남긴 음식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기 작품으로 군권과 자본을 앞세워 무위도식하는 러시아 귀족 계급을 비판하고 정직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는 농민을 찬양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 8만 명이 집회를 열었다. 투쟁의 주요 사안은 8시간 노동 시간 보장이었다.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다. 집회는 결국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언론을 앞세운 기득권은 노동 운동을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역사는 노동자의 편에 있었다. 이 집회는 노동자의 인권 문제로 인식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1889년 제2인터네셔널에서 5월 1일을 국제 근로자의 날 즉 노동절로 정했다. 이날은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기념하는 날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성직관, 노동직관, 전문직관이 있다.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혹은 군사부일체 등에서 드러나듯 교사를 노동자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급변했다. 현재 학부모와 학생은 교사를 자기 필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좀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교사를 평가한다. 교사의 신념보다 규칙과 절차에 따라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교사는 늘 다양한 연수로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학교 교육은 이미 하나의 서비스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탈진한 상태로 돌아왔다. 지친 몸에 돛대를 어깨에 메고 언덕을 5번이나 쉬며 올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소명을 지키고 있었다. 교사도 아이를 가르치는 소명을 다해야 한다. 주변의 평판이나 비교는 필요치 않다. 우리는 가르친다는 진정한 노동자만이 나를 만든다. 나에게는 나를 존경하고 내가 그리는 마눌린이 많다.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breakers)>
예술가: 구스타브 쿠르베(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819년~1877년)
국적: 프랑스
제작 시기: 1849년
크기: 165×257㎝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드레스덴 고전 거장 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