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연_잇다! 29화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 바실리 베레스챠킨 <전쟁의 신격화>

by 유노 쌤


나는 전방 사단에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그 시기 훈련은 많았다. 다행히 북과의 실제 교전 상황은 없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는 전쟁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쟁을 잘 아는 것은 전쟁에 대한 간접 경험이 많아서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분들의 무용담은 물론이고, 그리스 로마 신화, 한국사, 영화나 드라마로 전쟁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전쟁은 영웅들의 각축장이며,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다. 전쟁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바실리 베레스챠킨의 작품 <전쟁의 신격화>는 투르키스탄 원정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참상을 고발한 연작 중 하나다. 전쟁으로 몸을 잃은 두개골은 산을 이룬다. 두개골만으로는 나이, 성별, 국적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알 수 없다. 두개골에 난 칼자국은 참혹한 전쟁의 각인이다. 시체의 맛을 기억하는 까마귀는 무리 지어 날아든다. 허무한 누군가의 죽음이다. 그는 전쟁에 대한 경고로 작품 한 면에 "과거, 현재, 그리고 다가올 모든 정복자들에게"라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1107px-1871_Vereshchagin_Apotheose_des_Krieges_anagoria.jpg

베레스챠킨의 작품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 전시에는 통일 독일의 1등 공신 헬무트 폰 몰트케가 방문했다. 헬무트의 눈에 들어온 그의 작품은 너무 위험했다. 적나라한 전쟁 장면은 분명 젊은 병사들을 동요시킬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작품 관람 금지 조치를 내렸다. 1881년 비엔나 전시회에서도 오스트리아 전쟁 장관이 전시를 제한했다. 러시아 차르 정부는 전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책과 정기 간행물의 복제도 금지했다. 부당한 조치에 화난 베레스챠킨은 작품 세 점을 불태웠고, 정부에는 그림을 팔지 않았다.


한국 전쟁 중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했다. 7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맥아더는 영웅을 넘어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자기 조국인 미국에서 조차 그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딴 무기가 하나도 없다. 전쟁 영웅을 신격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은 인정하되 희생자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이 먼저다.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푸틴처럼 독재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늘 상존하다. 새로운 신화를 꿈꾸는 독재자는 언제든 자신의 무대가 될 전쟁을 원한다. 전쟁의 실상을 후대에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국가 전반에 민주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 인류 역사에 비해 민주 역사는 매우 짧다. 역사 발전이 조금이라도 퇴보하는 순간 또다시 전쟁은 발발한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전쟁의 신격화(The Apotheosis of War)>

예술가: 바실리 베레스챠킨(Vasily Vereshchagin, 1842년~1904년)

국적: 러시아

제작 시기: 1871년

크기: 127×197㎝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트레차코프 미술관

keyword
이전 28화결혼은 기적의 결과이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