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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Mar 13. 2023

개학

일상에서의 작은 탈출 - 송해공원에서 산책을 시작하다.

나의 기억 속 3월은 항상 새 학년의 시작이다. 학교를 향하는 발걸음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한 걸음 앞서 다가온다. 2년 전 처음 달성군에 소재한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는 더욱 그랬다. 교직 경력에서 중학교는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걱정거리는 등교 그 자체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30Km가 넘었다. 운전만 1시간 남짓 걸렸다. 등굣길은 항상 심각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교통정체 구간을 지나야 했다. 대구수목원 앞 삼거리를 통과하려면 신호를 5번 정도는 받아야 했다. 달성으로 이어지는 테크노폴리스로에 진입하려면 여러 갈래에서 몰려드는 차량 행렬에 휩싸여 서행해야만 했다.  대부분 차량은 교통 법규를 잘 지켰다. 하지만 늘 끼어드는 차량은 있기 마련이다. 끼어드는 차량은 교통 흐름을 방해했다. 많은 차량은 큰길에서 벗어나 나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골목길을 이용하여 끼어들며 교통 혼잡을 가중시켰다. 


새 학교로의 전근으로 인한 나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아침이었다. 예전보다 1시간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8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등굣길은 늘 졸음을 야기했다. 터널 속에서 차량이 가다 서다 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졌다. 분명 한 번은 앞 차를 박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육체와 정신은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경로는 50Km나 되는 신천대로와 고속도로를 거치는 등굣길이었다. 시간은 5분 정도 더 걸렸다. 하지만 서행 구간은 길지 않았고, 터널도 없었다. 화원 IC에서 나와 이어지는 구간은 자연스럽게 송해공원으로 이어졌다.

[3월 초 송해공원의 아침 산책에는 해가 비치지 않는다.]

시시포스 형벌처럼 매일 반복되던 일상에 송해공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봄이면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다양한 꽃이 피고 진다.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다. 겨울이면 호수면에 얼음에 덮이기 시작하고, 하얀 빙벽도 만들어 놓는다.  물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누군가가 방생한 거북이나 자라를 술래잡기하듯 찾을 수 있다. 철새는 놀라울 정도로 계절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날아오고 떠난다. 원앙의 아름다운 자태는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늦가을에 만난 수달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군청에서는 송해공원 관리에 정성을 다 했다. 계절에 따라 튤립, 국화 등 아름다운 꽃으로 단장한다.


송해공원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셨던 방송인 '송해'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실향민인 송해가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면서 석옥이님과 결혼했다. 부부의 연은 그녀의 고향에 있는 옥연지로 이어졌다. 결혼 후 송해는 수시로 옥연지를 찾아 실향의 아픔을 달랬다. 이렇게 기세리의 옥연지는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1983년에는 옥연지가 보이는 산기슭에 묏자리도 마련했다. 1964년 준공되어 농업용 저수지로 활용되던 옥연지에 2015년 송해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7년 첫 선을 보였다. 2022년에는 공해기념관도 개소하였다. 2022년 작고한 송해는 2018년 먼저 떠난 부인과 함께 옥연지 옆에 나란히 묻혀있다. 

[달성군은 송해선생과의 소중한 인연을 송해공원에 고스란히 새겨두었다.]

나는 일상으로부터 작은 탈출을 기록하려고 한다. 아침 등굣길에 잠깐이나마 송해공원에서 산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송해공원의 산책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굴에 빠진 것같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늘 반복될 것 같은 형벌 같은 일상에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 풀숲에서 지저귀는 새, 숲에서 이는 잔잔한 바람, 잔잔히 일렁이는 호수 그리고 그 수면 밑에서 움직이는 작은 생물을 함께 하고자 한다. 영원할 것 같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을 혼자만의 세상에 가둘 수 없다. 새로운 삶의 피난처와 인식처를 찾는 이들에게 그 순간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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