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노 쌤 Mar 31. 2023

화양연화

벚꽃 잎은 비처럼 내리고, 새로운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송해공원은 새순으로, 꽃으로, 새와 물고기로 봄기운이 충만했다. 천지조화의 작용이 그지없이 오묘한 연비어약의 세상. 옥연지에 터를 둔 생물은 자기 존재를 완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예전 그 어느 시점에 있었을 동일한 봄날과 같은 하루일지 모르지만, 세상 모든 생명은 다 저마다의 이치에 따라 삶과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은 늘 도약하는 힘 즉 엘랑 비탈(élan vital)을 가지고 있다. 송해공원의 약동하는 기운은 나를 자연 속 하나의 생명처럼 따뜻하게 품어 주고 있었다.


2023년 3월 27일 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송해공원이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침 기온은 쌀쌀했지만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공원의 벚꽃 터널이 환희의 계절을 잔뜩 뽐내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에게 생동감을 주었다. 월요일 아침! 당연하다는 듯 출근길은 일찍부터 막히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볼 요량으로 조금은 둘러가는 북대구 IC로 차를 몰았다. 지금은 나의 질적 시간을 위해 수고를 투자할 만한 때다. 화원 IC에서 빠져나와 신호 앞에 대기했다. 잠시 뒤, 입장해도 좋다는 파란 신호가 떨어졌다. 찬란한 봄 버진로드로의 입장을 허락받은 것이다. 나는 봄의 황홀경으로 빠져들었다.  

화원 IC에서 송해공원으로 이어지는 벚꽃길이 만개했다.


2023년 3월 28일 화요일

공원에는 튤립이 많이 피었다. 수많은 튤립이 겨울을 이기고 자신만의 봄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부터 산책로에는 굴착기가 올라갔다. 팔각정에서 금굴과 이어지는 길에 임도구조개량사업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적막한 호숫가에는 땅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2023년 3월 29일 수요일

등산로 초입에 있는 과수원에서도 아침부터 무언가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많은 이가 나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하며, 부지런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호수에는 물고기가 여기저기서 자주 뛰어올랐다. 호수로 유입되는 하천에는 잉어와 베스 무리가 쉽게 눈에 띄었다. 검은 가마우지는 내가 왔는지도 모른 채 사냥을 하다가 인기척에 놀라 우스꽝스러운 날갯짓으로 날아올랐다. 세 개의 연못 주변에는 두꺼비들의 짝짓기로 탄생한 새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까만 올챙이 무리가 따뜻한 아침 햇살 기운을 받으며 활발하게 꼬리치고 있었다. 소금쟁이도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걷고 있었다.

두꺼비가 짝짓기를 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올챙이가 연못가에서 까맣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2023년 3월 31일 금요일

떨어진 벚꽃 잎들은 화원 IC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도로 한 구석에 두툼한 분홍색 띠를 만들어 놓았다. 벚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은 봄을 즐길 새도 없다는 듯 분주하게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녔다. 새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벚나무에서는 벚꽃 잎이 한 줌씩 떨어져 날렸다. 벚꽃 잎은 하얗게 흩어지며 비처럼 흘러내렸다. 그리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화양연화에 대한 옛 추억도 벚꽃 잎처럼 흩날렸다. 이제 많은 벚나무가 연둣빛 어린잎을 내밀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성장이란 한 순간에 대한 이별이며 그리움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유성의 꼬리처럼 다시 그리움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우리 삶도 한 번의 반짝임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전 04화 기다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