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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Apr 15. 2023

약속

돌아오겠다는 약속 대신 기다리겠다는 다짐만 있었다.

송해공원의 한편에는 솟대가 서 있다. 선조들은 신성한 소도에 솟대를 세웠다. 솟대를 세우는 문화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제1823호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져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3세기 후반 원삼국시대 이후 유적에서는 볏을 가진 오리모양 토기가 출토된다. 이는 장례와 의례에서 술이나 물을 담고 따르는데 사용한 후 함께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다.

선조들의 눈에 오리는 신비로운 생물이었는 듯하다. 사람이 쉽게 건너지 못하는 강을 오리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뿐더러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먼 길을 다녀온 오리는 어쩌면 헤어진 이의 소식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오리가 하늘 높이 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혹 저승으로 떠난 망자의 소식까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겨울이면 옥연지에는 많은 철새가 날아온다. 천둥오리, 쇠오리, 물닭, 논병아리 등 많은 개체가 호숫가 여기저기를 자기 집인 양 헤엄치고 다닌다. 호수에서 만나는 철새는 늘 관심을 끈다. 옥연지 겨울 철새 중 가장 진객은 원앙이다. 원앙은 천연기념물 제327호로 보호종이다. 생김새가 독보적으로 아름다워 많은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작은 덩치와 조그마한 눈에 겁이 많은 원앙은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주변 자극에 매우 민감하다. 원앙을 관찰하려면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2023년 4월 10일 월요일

송해공원은 무척 조용했다. 저번 주까지도 몇 마리 보이던 원앙마저 자취를 감췄다. 간다는 말도 없이 언제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없이 홀연히 가버렸다. 호수를 조금씩 비워가던 겨울 철새들이 원앙을 마지막으로 이주를 완료한 듯했다. 비워진 호수만큼이나 마음에 서운함의 공간이 생겼다. 일부 원앙은 텃새가 되어 1년 동안 만날 수도 있다는데, 옥연지에서는 원앙을 향한 기다림만 남았다.

2023년 3월 10일 오후, 옥연지 한 편에서는 무리를 지어 놀고 있는 원앙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발 밑으로 큼직한 민달팽이 한 마리가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한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기려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나비 한 마리가 훅 날아갔다. 속도는 빨랐지만 제비나비 종류의 봄형임은 알 수 있었다. 그때 호숫가에서 반가운 새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 물총새였다. 소리를 쫓아 물총새를 찾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앞으로 선명한 파란색의 물총새가 순식간에 쌩하니 날아가 버렸다. 드디어 물총새가 송해공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총새를 뒤쫓아 눈 맞춤이라도 하고픈 마음을 뒤로한 채 출근 시간에 쫓겨 아쉽게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달은 몸짓은 매우 유연하다.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기쁘다.

2023년 4월 12일 수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급했다. 물총새를 찍기 위해 망원 기능이 있는 카메라까지 구입한 터였다. 그날따라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아침 교통 상황은 심각했다. 송해공원에 평소보다 1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물총새를 수색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 녀석을 찾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옥연지를 가르는 긴 물살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수달임을 알았다. 얼른 카메라를 켜서 수달을 포착했다. 작년 가을에 헤어진 후 처음으로 다시 만났다. 역동적으로 헤엄치는 수달의 모습은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 만날 것이라는 약속은 없었다. 지난겨울 혼자서 내내 다시 볼 날을 기다렸던 녀석이다. 수달은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보호종이다. 송해공원에 정확히 몆 마리가 서식하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그동안 관찰한 개체는 4마리였다.


2023년 4월 13일 목요일

황사가 최악이었다. 송해공원 주변으로도 황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산비탈에는 각시붓꽃이랑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옥연지를 찾아왔던 물총새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는 아직 먹잇감이 부족해서 그런 듯하다. 아마 물총새와의 만남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2023년 4월 14일 금요일

황사가 여전히 심각했다. 송해공원의 튤립은 이제 지기 시작하고 덕분에 화단의 한쪽이 휑해졌다. 호수 다리에는 아침부터 조명을 수리하는 기사분이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이 많은 만큼 유지 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못에는 올챙이들이 헤엄치는 사이로 베스가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올챙이는 연약한 몸을 지키기 위해 여러 무리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간간히 울음소리만 들리던 참개구리가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삶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꿈나무 사계정원에는 김기민 작가의 작품 '기다림'이 있다. 귀여운 작품은 아침 햇살을 얼굴에 가득 맞으며 벤치에 앉아 함께 했던 누군가를 추억하며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벤치 뒤에는 자작나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자작나무는 태울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조들은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기원했다. 한자로는 화(華) 또는 화(樺)라고 한다. 흔히 결혼식의 의미인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사계정원의 자작나무에는 그리움을 담은 별이 이파리처럼 걸려있다.


서정주 시인은 '보고 싶은 마음을 오래 참으면 별이 된다' 노래했다. 옥연지에는 많은 별이 떠다닌다. 오늘따라 바라본 옥연지는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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