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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Apr 07. 2023

불청객

봄에는 모두가 반기는 손님만 오는 것은 아니다.  

4월 첫 주, 송해공원에는 벚꽃의 바통을 이어받아 각종 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가능한 많은 자손을 남기려면 식물은 부지런히 꽃을 피워야 한다. 식물로서는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시기다.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이다. 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꽃가루를 왕성하게 생산하고 퍼뜨려야 한다. 화려한 봄날은 식물에게는 사랑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꽃피는 향연에도 불청객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눈은 간지럽고 발작성 재채기는 연신 이어졌다. 운전 중에도 찾아오는 졸음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봄은 견디기 괴로운 알레르기의 계절이다.

이른 아침부터 낚시꾼은 씨알이 굵은 배스를 낚아 올렸다.

2023년 4월 3일 월요일

늘 조용하던 송해공원 주차장이 낚시꾼들로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들은 차 트렁크를 열고 각종 낚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호숫가 명당에는 이미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를 잡은 낚시꾼들이 낚시에 열중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했는지, 이미 씨알 굵은 배스 여러 마리가 살림통도 아닌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달성군청에서는 4월에서 10월까지 매달 첫째 월요일에 배스 낚시를 허가하고 있다. 생태계교란종으로 분류된 배스에 대해 낚시 금지 구역인 옥연지에서도 일정 기간, 퇴치 사업의 일환으로 낚시를 허용한 것이다. 출생지가 북아메리카인 배스의 원래 이름은 큰입배스 혹은 큰입우럭이다.  1973년 양식을 목적으로 도입 한 이후, 경제적 타당성이 없어지자 곳곳에 대량 방류되었다. 배스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생태계에 불청객으로 자리 잡았다.

벚나무는 잎이 났고, 겹꽃홍도화는 만개하기 시작했다.

2023년 4월 4일 화요일

호숫가에는 잉어가 산란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오늘은 잉어의 사랑을 훼방 놓을 낚시꾼은 없었다. 분명 잉어에게는 낚시꾼이 불청객이었을 것이다. 산책길은 벚꽃이 복숭아꽃과 겹꽃홍도화로 교체되고 있었다. 튤립은 만개해 송해공원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극하고 있었다. 튤립의 만개 소식은 입소문이 난듯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데이트 나온 커플, '플란더스의 개'의 여주인공 아로아의 복장과 비슷하게 차려입은 숙녀분들, 반려견을 데리고 온 가족, 손을 잡고 산책 나온 노부부 등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이 튤립 화단 사이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열중했다. 


2023년 4월 5일 수요일

비가 왔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봄비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꽃잎은 힘없이 떨어졌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어렵게 피워낸 꽃잎과 이른 이별을 해야 했다. 가뭄에 단비라 기다리던 봄비였지만, 꽃나무에게는 가혹한 불청객일지 모르겠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문무왕 17년(서기 677년) 2월 25일(양력 4월 5일)에 신라는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삼국통일을 이룩했다. 문무왕은 이를 기념해 나무를 심었다. 이런 연유로 식목일이 4월 5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100년도 지나지 않아 4월은 나무를 심기에 부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지금은 3월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때 이른 봄은 모든 생물에게 불청객이다.

비 개인 아침 송해공원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2023년 4월 6일 목요일

병원을 다녀왔다. 약도 먹었다. 봄비는 공기 중에 날리던 꽃가루까지도 말끔히 씻어 내어 주었다. 마음껏 들이킨 공원의 아침 공기는 그동안의 답답함을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 상쾌했다. 식물도 봄비를 잔뜩 빨아들였는지 생기가 넘쳤다. 오늘따라 아침 출근길이 유난히 산뜻했다. 송해공원에 설치된 김경민 작가의 작품 'Good Morning'에는 아침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었다. 늘 스쳐 지나던 작품이 오늘따라 정겹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호숫가를 둘러싼 산은 이제 제법 파릇파릇한 빛깔을 내고 있었다.

산책로 옆 산기슭에 뿌리를 내린 식물은 파릇파릇한 잎을 내밀고 있었다.

2023년 4월 7일 금요일

한 밤 중에 내리던 비가 새벽에 그쳤다. 하지만 아침은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옅은 안개가 끼었고,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도 함께 몰려왔다. 하지만 봄은 여전히 약동하고 있었다. 연못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올챙이들은 까맣게 떼를 지어 수면 위를 오르내렸다. 원앙 무리는 아직 옥연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철새들이 떠난 자리를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송해공원에는 이른 봄 날씨에 꽃이 일찍 피고 졌다. 하지만 꽃들의 사랑을 전할 벌이나 나비는 찾을 수 없었다. 이른 봄소식은 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곤충에게도 불청객으로 와닿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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