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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Mar 20. 2021

최강 동안 그녀, 비결은 채식이었을까

풀만 먹는다고 코끼리처럼 살이 찌지는 않더라고요

  통통한 뱃살과 허벅지 그리고 두꺼운 하체  


  어릴 적부터 나의 몸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팔다리만 가는 전형적인 거미인간의 모습이었다. 스키니진이 유행할 때는 정말 허벅지를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지방흡입을 고려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대학생 때는 덴마크 다이어트, 책벅지, 클렌즈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등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다 해본 것 같다. 칼로리를 커트해준다던 약도 주기적으로 복용했고 매일 공복에 홈트레이닝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살이 빠지는 건 역시 다이어트를 할 때뿐이었다. 


  방학마다 필사적으로 운동을 하고 개강을 하면 다시 늘어나는 체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학업과 다이어트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배가 되는 느낌이랄까. 


  더 힘들었던 건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다이어트 후기들과 인생역전 스토리가 왜 나에게만 허락되지 않는 건지 한 숨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도 금방 권태기가 찾아왔고 '나는 뭘 해도 되지 않는구나.'라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수험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난장판이 되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공부는 갈수록 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로 풀었다. 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치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살이 찌다 보니 운동이 더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시 먹고 하는 일련의 행동을 반복했다. 살이 계속 찔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였다. 어느 날은 허벅지에 생긴 선명한 튼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임산부들에게나 생긴다던 튼살이 나에게 생기다니... 뒤늦게 효과가 좋다던 튼살크림을 사다가 발라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마음에 남은 흉터들이 눈으로 보이는 듯했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원했을 뿐이었는데 나중에는 나의 몸 구석구석을 혐오하고 있었다. 여기는 이래서, 저기는 이래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까.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채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더 많이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먹었더니 2시간이면 소화가 끝이 나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독서실에서 꼬르륵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민망함에 물을 들이켜봤지만 소리는 더 커져갈 뿐이었다.


  과일도 야채도 밥도 있는 힘껏 꽉꽉 채워 먹어야 그나마 허기가 지지 않았다. 아빠가 밥그릇을 보고 놀랄 정도였으니 족히 2배 이상은 먹은 느낌이다. 그런 노력에도 2시간의 마법은 이어졌다. 소화 능력이 갑자기 발달하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조금 먹어서인지 알 수가 없으니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차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가득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영양소가 부족한가 싶어 견과류와 두유를 간식으로 챙겨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모님도 식사 때마다 덩달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닭없는 간장찜닭. 셋이서 약 5kg를 먹었다...



  채식의 부작용은 아닐까 싶어 초조한 마음으로 건강검진을 해봤다. 정상, 정상, 정상. 인바디 결과를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헬스를 꾸준히 다녔을 때보다 더 건강해진 게 아닌가. 


  1달 만에 체지방이 2kg가 빠지고 거기다 근육은 0.5kg 증가했다. 아마도 이유라면 식사 후에도 가벼워 바로 자리에 일어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움직임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많이 먹어도 찌지 않는 평생의 소원을 이뤄낸 듯싶었다. 생각보다 체중변화는 미미했지만 눈으로 보기에 훨씬 건강해졌다. 만나는 이들마다 뭘 먹었길래 갈수록 어려지냐는 물음을 받았으니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싶다. 




  피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참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매일같이 배달음식을 시켰다. 매일보다는 매끼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그때만 해도 이마에는 좁쌀여드름이 가득했다. 피부 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압출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레이저 시술을 받기도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저녁마다 호호바 오일을 바르기도 하고 노폐물 배출에 좋다는 작두콩차를 끓여 수시로 마셔 보았지만 결국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 밖에는 남은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채식을 하고 나서는 어느 순간부터 피부에 트러블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드름 때문에 고생한 과거가 마치 전생의 일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한 번도 피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매끈한 얼굴이 되어갔다. 여드름 흉터도 전부 사라졌고 이제는 피부를 가리기 위해 화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동안으로 유명한 배우 임수정 씨가 떠오른다. 매끈한 피부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미모의 비결도 채식이 아니었을까. 연예계 대표 비건이라는 소식에 그런 생각들을 나름대로 해보았다. 


  요즘은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을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어렵다면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채식으로 대체하는 건 어떠냐고 홍보를 하고 있다. 경험해보기 전엔 나도 편견이 가득했었으니 적당히 한 번만 말하고 빠진다. 


 시작하면 알게 된다. 나보다도 나의 몸이 말해준다. 채식이 꽤나 몸에 잘 맞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다 따라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채식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다이어트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동안의 나를 어떻게 대했나 하고 돌아보면 석고대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를 때렸을 뿐이었다. 때리는 나도 아프고 맞는 나도 아프고. 누구 하나 이득 없는 싸움이야말로 다이어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평생의 숙제라는 다이어트를 해결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더 값진 일상을 얻었다. 더 이상 나를 혼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들을 말이다. 어쩌면 다이어트를 해왔던 궁극적인 목표도 이 지점이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나를 가해하지 않는 삶에 도달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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