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바람에 나부낄 정도로 고운 하얀 모래. 영국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해변이 눈앞에 펼쳐지자, 진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니, 이런 곳을 지척에 두고 왜 아무도 일언반구도 없었는지 참말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차로 15분이면 Seaford 바다에 닿던 Lewes에서 런던 외각에 위치한 Woking으로 이산 후로 저는 꽤 심한 바다 결핍증에 시달렸습니다. 바다를 몹시 좋아해서 Lewes에 살 때는 못해도 매주 두어 번은 가던 바다를, Woking으로 이사한 뒤로는 거의 가지 못 했으니까요. 그래서 23년도 여름, 저는 기를 쓰고 구글 지도를 뒤져가며 Woking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 있을 만한 바다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West Wittering입니다.
영국 직장인들은 보통 여름휴가를 다른 유럽 국가로 갑니다. 그중 뜨거운 햇살과 저렴한 물가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영국인들의 단골 여름 방문지입니다. 포르투갈 남부에는 오죽하면 포르투갈인 보다 영국인이 더 많은 지역이 있다고, 친한 포르투갈 친구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맑고 뜨거운 날씨, 저렴한 물가, 맛난 지중해 음식 외에도 영국 사람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여름휴가를 가는 대에는 '해변의 품질'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역시 섬인지라 섬 둘레를 따라 수많은 해변이 있는데, 영국 해변의 모래는 보통 거칠고 입자가 굵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모래에 몸을 던지고 파묻고 하기에는 조금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고운 모래사장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Cornwall 등에 있는지라,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나 비용 그리고 영국의 물가를 생각하면 스페인, 포르투갈로 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West Wittering은 놀라웠습니다. 런던 서부 혹은 남부에서 2시간이면 닿는 거리에,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인다면 충분히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영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해변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던 겁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가 구글 지도에서 해안선을 확대해 가며 이곳을 우연히 찾아내기 전까지 사람들이 West Wittering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West Wittering에 다녀온 뒤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몇몇 나이 든 분들만 '아~~ 그래 그런 곳이 있었지'하는 정도였습니다. 완전 숨은 보석인 셈이죠.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의 끝에는 파도 하나 없이 아주 천천히 깊어지는 바다가 반겨주었습니다. 수영을 하기에도, 소형 요트를 타기에도, 카약을 하기에도, 패들보드를 타기에도 훌륭했습니다. 그 해 여름, 저희는 영국 남부 해안선을 작고 빨간 해치백으로 여기저기 누비며 새로운 영국의 모습을 알아갔습니다. 그중 West Wittering은 단연 최고의 해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여행 차 영국을 방문하는 분들께 권할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가 없이는 가기가 몹시 불편하고, West Wittering 보다 훨씬 더 멋지고 접근성 좋은 해변이 유럽 곳곳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런던 근교에 살고 있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면 좋은 곳입니다. 특히 바다와 해변을 좋아하는데, 당일치기 차로 이동하고 싶으시다면,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여 다녀오기 썩 좋은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