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십 대의 끝자락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직업들이 있었고 그 직업들 중 어떤 일이 내게 가장 잘 맞고 내가 가장 좋아할지를 알기란 아쉽게도 불가능했다.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해 보기엔 인생이 짧아도 너무 짧았으니까. 더구나 직업이란 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직업은 매년 사라지기도 새로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에 가장 중요할 선택에 있어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했다.
당시 열여덟, 열아홉이었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먼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나를 알아가기'로 했다.
- 내가 좋아하는 것: 책 읽기, 글 쓰기, 맛있는 것 먹기, 새로운 지식 쌓기, 캠핑, 등산, 여행,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기.
-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수학, 경제, 지리, 물리, 화학, 지구과학.
특별할 것 없는 유년시절과 초중학교 시절을 거쳐 여느 고등학생과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던 내게 이 이상 더 창의적인 답은 무리였다. 지루하고 뻔한 경험들을 해왔기에 그 너머를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하여 그때의 나는, 지금 진로의 방향을 정하기 보단 더 많은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해보아야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장은 학생의 본분을 다하며 내가 어떤 과목을 특별히 좋아하는지 알아보기로 했고, 졸업 후에는 바로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1, 2년 길게는 5년까지 흥미롭고 다채로운 경험들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 과학고를 준비하며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과학을 미리 다 배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2학년에 올라가며 문과를 택했다. 보통은 성적을 위해 잘할 수 있는 과목을 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기에 이런 내 선택은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을 조금 당황케 했다. 배워보니 경제, 사회문화, 한국지리 등 문과 과목들 또한 수학 과학 못지않게 상당히 흥미로웠고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배워 내가 진정 이 분야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다. 더불어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보이지 않는 호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걸 누리고자 열심히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과목을 가리지 않고 대게 100점 혹은 한 문제 정도 틀리는 것에 그쳤고 내 기억으로 고등학교 종합 내신이 평균 1.2등급이 나왔다. 지금 돌이켜봐도 참 기가 막힌 성적이긴 하다. 모의고사 점수 또한 무슨 서울 어디 죽어라 공부하는 애들처럼 했던 것도 아닌데 400점 만점에 늘 380 언저리를 왔다 갔다 했다.
성적이 이리 좋다 보니 울산에서 뒤에서 1, 2등 한다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내게 거는 기대가 적잖이 컸다. 자식에게 별 욕심이 없는 부모님 또한 주위에서 공부 잘하는 아들 어디 대학을 가도 가지 않겠냐며 비행기를 방방 태우니 괜스레 기대를 하시는 듯했다. 허나 내 계획은 이런 주변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애초 생각했던 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여러 경험을 해 볼 심산이었다.
내게 대학이란 자기 진로에 확신이 있고 그 진로를 향함에 있어 대학을 가는 것이 그리고 특정 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이 꼭 필요할 때 가는 곳이었다. 이런 너무도 당연한 생각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성적에 맞춰 학과 상관없이 가능한 한 높은 대학, 알아주는 대학으로 곧장 진학하기에 혈안이 된 모든 사람들이 내겐 이상해 보였다. 솔직히 단체로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에 4년이라는 시간을 그리고 상당한 금액을, 깊은 고민도 제대로 된 계획도 분명한 확신도 없이 그저 남들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투자하는 것이 지독히도 잘 못 되어 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난 뒤였던 듯하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여행도 다니고 일도 해보고 다른 여러 경험들을 해본 뒤,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것에 있어 대학 진학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지면 그때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자식이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 하니 불안해하셨고 담임 선생님 및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은 이 놈이 무슨 사춘기 바람이 들어 이런 미친 소리 하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저 세상 물정 모른다고, 우선 좋은 대학에 간 뒤 그때 가서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그게 한국 사회에서 마땅히 취해야 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왜 곧장 대학에 가는 것이, 왜 학과 상관없이 높은 대학에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고 좋은 선택인지는 말해주지는 못 하면서 그저 그게 맞는 거라고만 했다.
당연했다. 논리가 있을 리가.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인 것을.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그러니 이게 맞겠지 라는 생각으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된 생각 따위 해보지 않고 다 같이 미쳐있던 것뿐이었던 것을.
다행히도 내 말에 엄마는 조금 귀를 기울여주셨다. 막연히 불안해하시면서도 듣고 보니 대학을 곧장 가는 것이 왜 맞는지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원체 모두가 대학에 바로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니 괜스레 불안하다. 단순히 너를 제외한 모두가 미쳤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대학에 가라. 어차피 아버지 회사에서 학비가 나오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생활비는 지원해 줄 테니 대학에 가라. 그리고 가서 자퇴를 하던, 전과를 하던, 편입을 하던 네 마음대로 해라. 대학에 가는 것 또한 어찌 되었든 새로운 경험이니 돈 걱정 말고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
내 삶의 결정에 개입할 여지를 준다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지원받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으나, 입학 후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시니 좋은 타협점이라 생각했다. 거기다 아버지 회사에서 꽁으로 학비를 탄다고 하니 미안함도 덜했다. 그렇게 일단 대학에 가기로 결정하고 여느 친구들과 다를 것 없는 고3 막바지를 보냈다.
내신이 전교 2등이라 서울대 혹은 고려대에서 나오는 지역균형 선발권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의고사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학교는 지역균형 선발권을 다른 학생들에게 주었다. 나는 정시로 충분히 서연고에 갈 수 있으니 다른 내신만 높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줘 가능한 한 많은 학생을 이름 있는 대학에 보내겠다는 학교의 심보였다. 내 입장에서는 이 같은 결정이 솔직히 괘씸했다. 이왕 대학에 가기로 한 거 남들이 그렇게 치켜세우는 서연고에 입학하려 했는데, 쉽게 갈 수 있는 것을 학교 욕심으로 어렵게 만드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서연고에 가려했던 이유는 남 평가질 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서연고에 입학하고 자퇴하는 것이 그나마 손가락질을 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 쟤는 뭔가 특출 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결정을 하는구나' 할 테니까.
여하튼 지역균형 선발권 없이 내신으로는 성균관대 정도밖에 갈 깜냥이 되지 않아 수시는 쓰지 않고 수능을 봤다. 불행히도 하필 전날 밤 감기몸살에 걸리고 또 당일 괜히 잔뜩 긴장해서 물수능이라는 수능을 죽을 쒔다. 360점이 조금 안 되는 성적. 학교에서는 재수를 권했으나 대학에 안 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재수는 얼어 죽을. 그냥 이 성적에 가지고 있는 내신 성적을 더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대학에 지원했고 붙었다. 전공은 영어영문학. 당장 분명하게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글로벌 시대에 영어라도 배워보면 어떻냐는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홍익대 영어영문학과.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첫 두 달만 수업을 나가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