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1.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어쩌다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당시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썼으니, 경주 집 다락방에 있을 그때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아마 답이 적혀있을 듯합니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제 기억 속 그 열일곱의 여름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연속이었습니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배우기 위해서. 왜 배워야 하는 걸까.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왜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쓸모가 있어야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돈은 왜 벌어야 하는 걸까.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무얼 위해 나는, 우리는, 사는 걸까. 연속된 질문의 끝, 그 마지막 질문은 결국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를 먼저 다지고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하듯, 그때의 저도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기초가 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내린 뒤 그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다른 이어진 질문에 대한 제 답이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의미가 있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두 달가량을 '왜 사는 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정해진 답이 있다'는 가정하에 궁극적인 답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누구나 동의하듯, 삶의 이유에 대해서도 모두가 공감하는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컴퓨터 하나로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기에, 이미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보았던 여러 사람들의 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하이데거와 같은 과거의 유명한 철학자들, 기독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등 신의 존재 혹은 윤회를 믿는 여러 종교의 신자들, 과학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고 그로써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학자들, 그 외 각자의 답을 내린 현시대의 여러 사람들. 짧은 조사만으로도 삶의 의미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는 궁극적인 답은 없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답들 중 어느 하나도 다른 답들을 압도하는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과학적 방식이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못 해도 그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논리적으로 납득이 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답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중 책장에 꽂혀있던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아마 베스트셀러라고 엄마가 사두었던 책인 듯했습니다. 우연히 펼쳐 든 그 책에서 '우리는 모두 행복하길 원한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이 공감되고 와닿아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후 여름방학의 끝자락에 저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내렸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답을 하기에는 내 배움과 경험의 깊이가 너무 얕다. 설령 억지로 당장 어떤 답을 내린다 할지라도 그 답은 몹시 빈약하고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금의 내 답은 '모르겠다'이다. 대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 즉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겠다. 살아가며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거치며 답을 찾아보겠다. 분명하고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면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를 끝내 깨닫지 못한 다면, 나만의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 목표와 이유가 생겼으니 다음으로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습니다. 이 질문에 답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이유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에 정답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 모를 강한 믿음이,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의지가 그저 확고하게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마음은 어떻게 살고 싶어 할까. 이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어떨 때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봄내음을 맡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자전거를 탈 때. 재미있는 글을 읽을 때. 마음 맞는 친구와 여행을 할 때. 관심 있는 것에 대해 더 알아갈 때 저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순간순간의 행복이었습니다. 하면, 살아가면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언가에 대해 제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이가 클수록 더 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제 기대수명이 여든이라고 가정했을 때, 열일곱에서 여든까지의 인생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우리 부모님 그리고 주위 다른 어른들의 삶을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보았을 때, 저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 경제활동, 즉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높은 확률로 일주일에 평일 5일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하루를 보았을 때는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일을 하며 보낼 것입니다. 스물여덟에 처음 일을 시작하여 6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37년, 남은 인생의 약 60% 동안 이 같은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으로 제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