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리옹
살면서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 드는, 잘하고 있는 건 맞는지 의심스러운 순간들.
나에겐 리옹에서의 겨울이 그랬다. 고집을 부려 오기로 오긴 왔는데, 이게 맞는 건지, 행여나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어떡해야 할지. 늘 외롭고 불안한 날들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내겐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어학과 학교를 준비할 수 있는 다른 유학생들이 부럽기도 했고.
불안했던 내 마음과 달리 겨울이 지나고 첫 봄이 찾아온 리옹은, 정말 무심하게도 아름답고 눈이 부셨다.
앙상했던 겨울 나뭇가지들은 햇살을 받고 싱그럽게 반짝거렸고, 흐린 빛의 론강은 물감을 탄 것처럼 푸르렀다. 햇빛과 야외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은 날씨가 풀리자 너도 나도 카페 테라스와 강가에 앉아 일광욕을 즐겼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낭만 그 자체였다.
예고도 없이 성큼 다가온 그해 봄처럼, 나에게도 선물같이 찾아온 기적의 밤을 잊지 못한다.
밤 산책을 마치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여느 때와 다름없던 날. 노트북을 켰고, 마침 발렁스 학교 사이트에 입학 합격자 명단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뚤루즈 보자르에서 큰 쓴 맛을 봐버렸고, 내심 도시가 더 크고 매력적이었던 몽펠리에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희망 없이 PDF 페이지를 쭉쭉 내렸다.
그 순간 스크롤이 멈추고 두 눈이 동그래졌다. 계속해서 올라가던 낯선 외국이름들 사이에 적혀있는 건 분명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다. 믿기지가 않아 명단 파일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 보았다. 분명 2012년 1학년 입학 합격자 명단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침대 위에서 팔짝팔짝 뛰어댔다. 조금 더 정신줄을 놨더라면 기숙사 복도를 마구 뛰어다니면서 소리쳐댔을 거다. '나 프랑스에 온 지 4개월 만에 보자르에 합격했어.'
불가능하다며 딱 잘라 말했던 유학원들, 어렵게 한 푼 한 푼 아끼며 출국 준비를 하던 한국에서의 날들, 그리고 늘 불안에 시달렸던 혼자만의 시간들..
그 모든 걸 다 보상 받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날만은 내가 세상의 승자였다.
한밤중에 기숙사 밖으로 뛰쳐나와 건물 앞에 있는 유일한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갔다. 유학원에서 준 긴급통화용 국제전화카드를 드디어 써볼 차례였다. 집에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국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고 엄마는 졸린 목소리로 축하를 해주었다.
며칠 뒤에 몽펠리에 보자르에서 불합격 소식이 들려졌다. 정말 아슬아슬하게도 지원한 3개의 학교 중 기적적으로 1개에만 합격한 것이었다. 만약 발렁스 보자르마저도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전했던 말이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5월의 눈부신 봄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온전한 프랑스의 삶을 아무런 불안감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며,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며, 나날이 향상되는 불어로 어학원의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제니퍼, 멜리사와 같이 여행도 다니며. 그렇게 짧은 리옹에서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학 하던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가장 행복하게 남아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느덧 8월, 여름이 되었다. 길어진 해처럼 이제는 익숙해진 리옹의 일상이 따스롭고 여유로웠지만, 내 여정은 또 다음 챕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9월에 시작되는 첫 학기를 위해 나는 이사를 준비했다. 정든 내 방을 정리하고 정든 이 기숙사를 떠나야 했다. 발렁스는 리옹에서 기차를 타면 고작 1시간 거리였지만, 이곳의 친구들과 익숙해진 일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외국에 살면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인연도, 삶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방을 모두 정리한 뒤 짐을 들고 기숙사 입구로 내려왔을 때는, 제니퍼와 멜리사가 차를 끌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프랑스에 온날, 끌고 다니느라 말도 못 하게 고생했던 이민가방을 차 트렁크에 넣고,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기숙사와 리옹을 뒤로하고 발렁스로 향했다. 계획도 없이 홀로 프랑스에 온 지 8개월 만에 참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더 이상 혼자 고생하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생겼고, 내가 다닐 학교가 생겼다.
'훨훨 날아라 다립아.'
내 합격 소식을 전하자 바로 축하 메시지를 전해줬던 친구의 말처럼 드디어 이룬 유학의 꿈을 마음껏 펼칠 앞으로의 시간들을 기대하며 우리는 발렁스에 점차 가까워갔다. 물론,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더 큰 고난의 시간들은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2012년 여름, 리옹 기숙사 방에서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