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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으로 입원하다.

두려움을 뒤집어 쓴 나는....

by mini

서울에 거주하는 딸아이집에 다니러 갔다. 감기인듯 코로나인듯 열도 나고 기침도 하더니만 어느 순간 들숨과 날숨에 왼쪽 폐가 있는 부분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하였다. 쉴새없는 기침에 목구멍이 부어서 호흡도 곤란하게 되어 급히 응급실로 갔다. 우선 격리부터 해야 한다며 하얀벽으로 둘러싸인 작은방에 나혼자 두었고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의료진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검사부터 결핵검사까지 하고 음성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각종 검사가 시작되었다. 피를 뽑고 링거액을 달고 CT를 찍고 거의 하루를 다 보내고 오후 늦게서야 폐렴이라는 진단으로 임시병실에 안내되었다. 호흡기 내과에는 빈 병실이 없으므로 빈자리가 날때까지 임시병실에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가족들의 면회도 안된다. 외부인의 면회금지로 딸아이는 내게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서 안내 데스크에 맡겨두고 병원 직원들이 나에게 전해주었다.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금방 나을거니까 걱정말고 치료에 전념하라고 말했다. 왠지 34살 미혼인 딸이 나의 커다란 보호자 같아서 울컥했다. 남편과 수원에 있는 아들에게도 이런 사정을 다 알리고 나서야 그나마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세끼 밥먹고 약먹고 주사는 팔에 꽂혀있는 상태로 잠을 자야 했다. 힘이 없고 나른하니 계속 잠만 잤다. 잠자는 동안은 편안하다. 그저 자면 되니까. 조금씩 하루하루 좋아지면서 입원5일째 퇴원을 했다. 딸아이 집으로 바로 가지않고 병원인근에 맛집에 들러 닭백숙을 먹고 또 인근에 커피숍을 찾아서 커피를 마시고 완전히 병이 다 나은듯 착각을 하고 돌아다녔다.


딸아이 집에 저녁 늦게 도착을 했다. 갑자기 급피곤해지면서 거실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얼른 약을 챙겨먹고 힘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내가 회복기 환자임을 잊었다. 병을 앓기 전 나인줄, 아니 이전의 건강한 내가 너무도 그리워서 그렇게 행동한것 같았다. 목이 마르다는 느낌에 눈을 뜨니 새벽2시다. 물 한컵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잠을 잤다. 아침에 출근하는 딸아이 배웅을 할수가 없다.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내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이 정도면 가도 되겠다 싶어 열차표를 예매하고 가족 단톡방에 나의 귀가?를 알렸다. 수원에 있는 아들녀석이 예매한 열차표 취소하라고 그리고 녀석이랑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내심 혼자 열차를 타고 가는일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이쁜 이모티콘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혼자 갈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전화가 왔다. 녀석은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러니 열차표를 취소하라고 했고 휴게소마다 들러서 소풍삼아 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알았노라고 말해버렸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주책없이 그만 오케이 해버렸다.


봄이 오기전에 서울을 갔는데 내려오는 길은 완연한 봄이었다. 여기저기 꽃들의 만발에 나는 연신 감탄의 말들을 쏟아냈다.

녀석이 하는 말, "엄마 감옥에서 막 나온 사람같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처음보는 세상처럼 이것저것 다 신기하고 휴게소에 만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친근감이 갔다. 커피를 사들고 간식 봉지를 손목에 걸고 휴게소마다 들러서 봄소풍을 즐겼다.


녀석에게 미안하지만 오늘만큼은 신세를 오지게 지리라 생각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툭툭 던졌다. 아직 미혼인 서른하나의 아들녀석이다. 결혼하게 되면 녀석과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도 안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텃밭에 나가서 봄나물들을 바구니 가득 담아와서 습관적으로 저녁준비를 했다. 녀석은 이런 나를 말렸다만 나도 모르게 나의 집에서는 무조건 내가 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는 회복기 환자인데 인정없는 남편은 아무말없이 내가 비틀비틀 차려주는 저녁밥을 맛나게도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기쁘다. 봄소풍을 시켜준 녀석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함께 마시자고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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