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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멍이라고 하는 것.

마당 아궁이.

by mini

나는 태어나보니 산골마을이었다.

밤이면 부엉이가 울고, 낮이면 뻐꾹이 소리와 산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나무로 밥을 짓고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새끼줄과 낫을 들고 동네 언니들이랑 산에 땔감나무를 구하러 가기도 했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아궁이 깊숙이 장작으로 군불을 때고, 엄마는 잔가지로 아궁이에 걸려있는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어쩌다 생선장수가 오면 자반고등어를 사서 석쇠에다 놓고 아궁이 숯불에 구워서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필요한 생필품은 5일장이 서는 읍내에서 구해 사용하였다.


남편이 퇴직을 한 후 전원생활을 한지 5년째다.

이사를 하고 제일 먼저 마당 한 귀퉁이에 아궁이를 만들고 솥을 걸었다.

물을 가득 넣고 불을 지폈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나의 어린시절을 보았다.

부모님과 1남 4녀는 아궁이에서 나오는 잔불에 가래떡, 고구마, 감자, 밤, 생선, 계란밥등 무수히 많은 먹을거리들을 만들어 먹었다.


명절이 되면 두 아이들이 집으로 온다.

나는 텃밭에 있는 재료들로 밥상을 차린다.

상추, 대파, 부추, 고추, 오이, 호박, 가지 우엉잎, 치커리, 루꼴라, 고수, 각종 산나물 등 여러가지가 있다.

생닭 한마리 사서 마당에 있는 엄나무와 구찌뽕 나뭇가지를 잘라서 솥에 넣고 푹 익혀서 백숙을 해서 먹는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두 아이들이지만 나의 시골음식에는 감탄에 하트를 보낸다.


오늘은 봄날씨 같지 않게 약간 쌀쌀한 것이 온 몸이 으스스하다.

이런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마당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백숙은 아니지만 물 가득 붓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잔나무 가지로 불을 지펴 아궁이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따뜻한 온기에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도 좋다.

돌아가신 부모님, 1남 4녀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나의 두 아이들이 그립다.

불길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로운 내가 만들어진다.

옛기억들이 다 좋진 않을텐데 불앞에서만큼은 그 어떤 기억도 그저 좋기만 하다.

공중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벗겨내듯 온몸이 편안하고 가벼워진다.

불멍이라 ....

세상에 부러운 것은 불멍에 다 녹아내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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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때 우엉잎에 볶음밥을 넣고 쑥갓꽃과 댕강나무꽃을 얹어서 곱게 싸서 접시에 담았다.

111.jpg 작년 추석때 늙은 호박을 긁어서 만든 호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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