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앞에 솔직한 나.
내가 어릴때 농번기가 끝나고 나면 마을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어른들 모두가 멀리 관광을 갔다. 떡이며 음료를 준비해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타는것까지는 봤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 그저 관광을 하고 왔겠거니 했는데 어느날인가 관광버스가 밤늦게 우리집 앞에 멈췄는데도 마을사람들이 내리지 않고 그 좁은 버스 통로에서 춤이라는걸 추고 있었다. 무슨 음악인지 모를 정도의 울림이 심한 리듬속에서 그저 똑같이 흔들어대는 몸짓에 충격을 받았다. 저런걸 춤이라고 한단 말인가. 지금껏 저렇게 놀다가 왔단 말인가. 그중 우리 엄마가 제일 신나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지금 내 나이 예순이다. 전원생활을 하러 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이 마을에서도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관광을 간다고 했다. 이것저것 준비해서 아침 일찍 관광버스에 올랐다. 간단하게 아침으로 꼬마김밥을 먹고 나니 오락담당하시겠다는 한분이 마이크를 들고는 오늘 하루 재미있게 놀자고 한다. 이미 60가구의 가구원들을 다 익히고 있는 터라 새삼 처음 보는 사람은 없고 다 익숙한 이웃들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듬도 알수 없고 발음도 알수없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음악을 귀청이 떨어지도록 크게 틀었다. 잠도 덜깬, 내게는 꼭두새벽이라고 할 만큼 이른 이 시간에 저런 음악을 나는 어떻게 소화해야 한단 말인가. 방금 먹은 김밥이 목에 걸렸다.
이 버스를 탄 사람들 중 나는 두번째로 어린나이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 두 눈을 감고 있을수 만은 없다. 나는 결심했다. 어릴적 우리 엄마의 춤을 나도 춰 보리라 하고 다짐을 하는 순간, 이웃 언니의 손이 내 손목을 끌어서 버스 통로에 세웠다. 이웃 언니는 시속 100킬로미터 버스 속에서 저토록 빠른 리듬을 타고 춤을 춘다. 참으로 재주도 좋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해 하는 표정을 나는 보았다. 순식간에 버스 통로는 사람들로 꽉차서 빈틈이 없었다. 다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듯 하다. 아 이를 어쩐다. 음주가무가 안되는 나.
어릴때 내 엄마가 추는 춤과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막춤들을 머리속에 떠올리면서 그들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민망함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순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빠르디 빠른 리듬속에 내가 서 있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볼수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이때 이장님께서 나에게 마이크를 손에 쥐어 주었다. 어쩌라고? 눈빛을 보냈지만 답을 읽을수는 없었다.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살짝 음악소리가 낮을때를 맞춰 "소리질러~~~", "꺄악~~~~ " 고함을 질렀다. 사람들이 따라서 소리를 질러주었다. 아 이렇게 하란 이야기구나. 세상을 살아온 짬밥(연륜)이 있으니 이 정도의 눈치는 있다. 수시로 소리를 질러대며 추임새?를 넣다보니 목이 말랐다. 이때쯤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대고 "이장님~~~소주한잔~~~~"이라고 소리쳤다. 다들 환성을 토해냈다.
하루종일 먹고 구경하고 춤추고를 반복하며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한때 이해하지 못했던 관광버스춤이 이렇게 좋은줄 몰랐다. 그리고 리듬에 솔직한 내가 좋다. 아무튼 즐거웠다.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에 또 갔으면 좋겠다. 이웃들과 더 많이 친해졌고 나혼자가 아니어서 몇배로 더 행복했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무엇이 나를 가볍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웃인가 아니면 관광버스 막춤인가. 쾌변을 보고난 후 느낌이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