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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반하다.

나의 수행은 호미질

by mini

공황장애 환자인 나는 가끔씩 힘이 없고 나른해진다.

처방약을 규칙적으로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도 모른채 이러한 증상을 겪어야만 한다.

오늘도 아침에 겨우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럴때는 나만의 처방이 있다.

침대에 누운채로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서 찬물을 한잔 마시고 찻물을 끓였다.


편한 복장을 하고 장화를 신고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잡초를 담을 손수레를 끌고 장갑을 끼고 한손에 호미를 들고 한손에는 커피를 들었다.

아무데나 편한곳에 엉덩이 깔개를 놓고 그 위에 앉았다.

커피부터 한모금 마시고 쏟아지지 않게 화단돌위에 조심스레 놓고 호미질을 시작했다.


잔디속에서 잔디인척 하는 녀석들도 있고, 홀로 우뚝 서서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다.

어린 풀들은 조금 더 클때까지 둔다.

뽑기도 어려울뿐더러 땅을 뚫고 싹을 틔운 이유를 스스로 알게 하고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무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머리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호미질 소리는 음악소리다.

투덕투덕 들리는 호미질 소리에 나의 몸과 마음은 리듬을 탄다.

뽑은 한무더기의 풀들이 손수레에 담긴다.

이 풀들은 채소밭에 뿌려줄것이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면서 서서히 말라서 어느새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은 울타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지나가는 이웃과 수시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 뒷산에 산나물이 있나 살피러 간다는 아저씨, 출근하는 차 안에서 창문너머로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를 끝으로 오늘 아침인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어느 새 이마의 땀이 콧잔등을 따라 턱에 모여 호미끝에 툭하고 떨어진다.

배도 고프다.

아침준비를 해야겠다.

두 손에 우엉잎이랑 고수잎이랑 대파 그리고 상추와 치커리 이 정도면 아침반찬으로 충분하다.


종교가 없는 나는 호미질이 나의 수행이다.

커피 한잔에 몇방울의 땀은 오늘 하루를 즐겁게 해주는 보약이다.

오늘 하루도 흙과 함께 시작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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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가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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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장미가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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