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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환자의 휴가는 이러하다.

휴가는 이렇게....

by mini

내가 공황장애를 앓고 난 이후 휴가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어떠했는가. 빈시간이 생기면 아니 없는 시간 만들어서라도 산으로 들로 그리고 찻집으로 열심히 다녔다. 특히 무더운 여름의 산속 캠핑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내집 마당이 휴가장소로 최고다. 그저 호미만 들면 마음이 가라앉고 즐겁다.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식물들과 텃밭 채소들을 보면 그저 행복하다.


이번 휴가는 좀 색다르다. 막내 여동생집 앞마당에서 풀을 뽑고 꽃을 심고 나무를 다듬고 있다. 동생이 휴가를 가면서 토끼랑 고양이들을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다른데 있었다. 토끼와 고양이와 더불어 앞마당에 풀이 그득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는걸 알기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동생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공황장애 환자의 증상은 개인차가 있다. 나의 경우는 혼자서 독단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마당에 편히 앉아서 호미질을 하고, 꽃을 옮겨 심기도 하고 씨앗을 뿌리기도 하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의논하지 않아도 되고 내마음 가는대로 그대로 표현을 할수가 있다. 가끔씩 지나가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 손님으로 보이는 내가 호미질을 하고 있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나보다. 자꾸만 누구냐고 물어온다. 어떤 사람은 꽃모종을 한줌 가져다 주기도 한다.


두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고, 엄마인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서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은퇴한 남편은 나에게 지나치게 기대고 있어 불편할 때가 많다. 내가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서 나를 따로이 사랑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오롯이 나만 사랑해야 한다. 이미 사랑하고 있다. 내가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년의 휴가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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