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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콩밭의 풀을 매 보았는가.

돌밭인가 콩밭인가.

by mini

어릴적 이맘때쯤이면 엄마는 콩밭을 매러 가자고 했다. 콩은 기름진 옥토가 아니어도 잘 자라기 때문에 놀고 있는 논두렁이나 비스듬한 못난 산밭에다 주로 심었다. 한해 콩 농사는 그해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궈야 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농사 중 하나다. 여기서 오뉴월이란 음력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칠팔월이 되는 것이다. 칠팔월은 뜨거운 햇살은 물론이고 바람도 없어 들일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된장과 간장을 돈을 내고 사먹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콩밭매기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산밭은 토질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돌덩이에다 칡넝쿨 그리고 온갖 이름모를 나무뿌리들이 합세하여 콩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거기다 풀까지 합세하여 서로 주인공이 되려고 하므로 우리는 호미를 들고 산밭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산밭은 집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점심 도시락(둥근 대소쿠리에 뚜껑이 있는)을 준비해서 가야만 했다. 엄마는 풋고추에 된장을 반찬으로 준비해서 콩밭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여러가지 간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자라도 삶을라치면 시간이 걸리기에 그저 있는 밥에 그리하였던 것 같다.


오르막길을 따라 한참동안 땀을 흘리며 산밭에 도착을 하면 이미 힘은 다 빠지고 드러눕고 싶다. 그러나 쉴수 있는 공간은 없고, 그저 콩과 풀이 수북한 광활한 일투성이 대지만 존재할 뿐이다. 이곳에서 해가 질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엄마는 삼베 보자기에 싸온 도시락을 밭옆 골짜기 바위 위에다 두고 잠시 쉬었다가 콩밭을 매기 시작한다. 나는 시원한 산골짜기 물이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다가 뒤늦게야 호미를 들고 콩밭매기에 합류를 한다. 장갑도 없이 모자도 쓰지 않고 짧은 팔옷에 호미를 들고 풀을 매다보면 풀쐐기에 쏘이기도 하고 햇볕에 얼굴이 따갑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호미질을 해도 콩밭 한 이랑을 매는데 왜 그리 진도는 안나가는지 지루하고 덥고 짜증이 났다. 어쩌다 바람 한점 지나가면 엄마는 " 아이고 약바람이네" 라고 하며 잠시 고개를 들어 바람 한가닥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웅크린 가슴을 편다.


시계도 없고 그저 하늘의 해만 보고 점심시간을 짐작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넓디넓은 콩밭은 언제 다 매나 하는 생각에 밥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다. 점심으로 싸온 보리밥에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와 항아리에서 갓 퍼낸 된장은 엄마에게 있어 최고의 맛이리라. 반대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나에게 엄마는 아직 덜 익은 머루와 다래를 따서 맛보라고 한다. 머루는 얼추 익어가고 있는데 다래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가 없다.


오늘은 남동생의 콩밭을 찾았다. 은퇴를 5년 앞둔 남동생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빈 땅에 콩을 심었다. 손이 덜 가고 정성껏 가꾸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심었다고 한다. 원래는 논이었는데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 7년간 임대를 해 주었더니 비옥한 논이 돌밭으로 변해 버렸다. 1200평이나 되는 땅의 돌을 다 골라내기는 엄두가 나지 않고, 일단 콩을 심어서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우리 네 자매는 팔을 걷어부치고 옛날 실력을 불러와 콩밭을 매기 시작했다. 호미와 돌이 부딪히는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옛날 콩밭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이토록 열심히 하다니 물색없다 소리 듣기에 딱이다.


경상도에서는 낙엽진 콩잎을 소금물에 삭혀 멸치젓갈에 갖은 양념을 한잎 한잎 발라서 겨울 내내 밑반찬으로 먹는다. 요즘은 귀해서 구하기도 어려운 낙엽콩잎 반찬을 올해는 마음껏 먹게 생겼다. 벌레가 먹어 예쁜 잎모양은 아니지만 신선한 공기에 농약 한방울 튀지 않고 자란 귀한 콩잎이다. 조만간 다시 와서 밭도 매고 돌도 골라내야겠다.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준 콩잎김치의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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