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파장이 되어 반드시 돌아온다는 가설
행동 하나가 세계 하나를 만든 후 급히 영혼으로 돌아온다. 내가 한 행동, 가족이 한 행동, 그리고 순수한 영혼이 움직인 행동은 다시 그들의 영혼으로 돌아갔다. 행동이 모여 세계가 되니 두렵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한 행동 하나는 사소해 보여 파장이 있기는 한건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소한 행동에 주목한 예술분야가 조각이다. 영혼이 세계로 통하는 경계를 뚫고 나온 모습을 조각은 표현하려 했다. 대리석이 희어서 조각 작품이 흰게 아니라 영혼이 막 빠져나온 것이라 흰색이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하얀 조각상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자아의 조각상에 때 묻어 영혼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축구장에 가보자. 감독을 포함하면 12명이 뛰는 한 팀의 흥미로운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자. 넓은 경기장에서 공을 가진 선수가 있을 때, 반대편 같은 팀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팀이 강한지 알 수 있다. 팀이 약해 늘 패하던 팀도 어느 날 공 반대편 선수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움직이고 같은 팀 선수들에게 파장으로 이어질 때 팀은 강해진다. 축구장에 가서 유심히 보아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모습은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조각상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목적을 갖고 행동하려는, 하지만 행동의 의도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조각작품 같은 순간을 가진 팀이라면 스타 선수가 없어도 두려울게 없는 강한 팀이 될 수밖에 없다.
홍명보감독은 예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시절부터 유난히 원팀을 강조했다. 원팀은 공이 없는 경기장 그림자 지역에서 살짝 움직이는 같은 팀 선수의 파장이 팀 전체로 연결될 때 만들어 진다. 감독은 이 움직임을 귀신같이 발견하고는 엄지척을 해준다. 이제 경기장 전체로 시선을 옮겨 보면, 공을 가진 그리고 가지지 않은 선수 모두의 움직임이 만드는 파장이 경기 내내 요동친다. 공을 가지지 않은 한 선수가 움직이는 순간이 하얀 대리석 조각작품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 팀이 “원팀”이 되는 순간은 축구경기에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공을 갖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주인공 역할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서민의 삶이 모여 원팀이 된다. 서민의 평범한 행동 하나 하나가 사회를 연대하는 힘이 된다. 서민의 삶이 대리석 조각상이라는 사회 원팀 가설이다. 몇몇 셀럽이, 대기업 몇개가 국가를 먹여 살린다고 믿는 사람은 사회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먼저 확인한 후 그런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믿음대로 사회가 구성되면 가장 먼저 버려질 존재는 그들 자신이다. 힘이 없어지면 또는 강자에게 버림받으면 추락하게 될 운명을 가진 존재가 모인 사회는 원팀이 아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심지어 아무런 역할이 없어 보이는 서민의 삶이 사회가 연대하는 파장일 때 그 사회는 강하고 강해서 행복하다. 강하다고 굳이 표현하는 이유는 언제든 공격해 올 세계 속 악당이 있기 때문인데 강해야 사회를 지킬 수 있다. 모든 생명은 그물망과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자각이 바로 원팀이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