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이대호선수가 20여년의 프로야구 선수를 마감하는 10월8일 은퇴식이 열린 불꺼진 사직경기장을 2만명이 넘는 팬들의 눈물이 밝혔다. 이대호는 롯데자이언츠, 국가대표팀 4번타자였는데 또 다른 멋진 별명이 붙여졌는데 조선의 4번타자이다.
누가 그에게 조선의 4번타자란 멋진 이름을 지어줬는지 모르지만 무쇠팔 최동원선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선수, 바람의 아들 이종범선수보다 멋진듯 하다. 전설의 홈런타자였던 이승엽선수의 별명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인간의 팔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강속구와 강한 어깨를 가졌기에 최동원선수는 무쇠팔이었고, 도저히 쳐낼 수 없는 강속구와 슬라이드가 일품이었던 선동열선수는 무등산폭격기였으며, 이종범선수는 어느새 나타나 분명 안타같았던 공을 처리하고 정교한 타격 그리고 바람같이 도루했기에 바람의 아들이었다. 그럼 이대호선수는 왜 조선의 4번타자였을까?
어떤 스포츠든 국가대표팀이 일본에게 지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 야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대호선수는 국가대표팀의 4번타자였다. 그가 국가대표에서 벤치를 지킨적도 있었고 3번타자, 5번타자를 한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조선의 4번타자였다. 그것은 국가대표팀 선수로 일본을 만났을 때 그가 분명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에 침략당했을 때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팬들의 사랑과 믿음에 2022년 이대호선수는 은퇴로 화답을 했다. 그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정한 것이다. 처음 은퇴를 발표하고 KBO가 은퇴투어를 결정했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이 이어지면서 그는 조선의 4번타자임을 증명했다. 은퇴하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게 연일 불방망이를 휘둘러 홈런 23개, 타율은 3할을 훌쩍 넘겼다. 팬과 동료선수는 그가 은퇴를 번복해 주길 요청했다.
은퇴시즌 그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두고 일부 해설자들은 경험많은 이대호선수가 노림수가 좋아졌다고 해석한다. 이는 조선의 4번타자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해설이다. 명백코 아니다. 이대호선수가 비록 노림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야구선수 타자로서 정점일 때 은퇴를 결심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생긴 불방망이라고 믿는다. 그의 성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실력이었다.
밀려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은퇴하는 선수가 지금까지 몇명이나 있었을까. 되돌아보니 전설이라 불렸던 그 어떤 선수도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은퇴를 결정했을 때 팬들 모두는 아쉬워했지만 그럴 때가 되었구나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이대호는 달랐다. 정말 위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를 위해 역할을 더 해줘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위기, 롯데자이언츠의 부진때문에라도 은퇴를 결정했고 그 결정으로 팀이 살아나기를 원했으며 구단의 지원이 나아지길 간절히 기원했던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팀이 살아나길 원해 은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 희생 때문에 그의 불방망이는 은퇴하는 해 빛을 발했고 팬들은 눈물로 아쉬워했다.국가를 대표했던 조선의 4번타자는 이제 이 시대의 4번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