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과테말라 무시무시한 첫 국경 넘기
정보가 몇 없지만 블로그를 찾아보니 산 크리스토발은 하루 이틀이면 다 볼 수 있다며 역시나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며 다들 열심히 여행을 한다. 나는 매일 봐도 예쁜데.
여행후기를 보다 보면 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마치 누가 제일 빨리빨리 여행을 잘하나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일주일 동안 멕시코 2개 도시를 돌았다’
‘아니다 일주일 만에 3개 도시도 가능하다’
‘그것도 아니다 일주일 동안 멕시코 횡단도 가능하다’
‘나는 5일 만에 멕시코 북쪽에서 남쪽까지 내려왔다’
다들 너무 부지런하고 대단한 여행자들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도 그게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마치 누가 더 여행을 잘하나 경쟁하듯, 자랑하듯, 그렇게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려고 지난 1년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늦잠을 자도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되는 이 자유가 너무나 좋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조금은 스트레스였는데, 뭐 어떤가? 누가 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너도 남들처럼 열심히 여행하라고 누가 보채는 것도 아닌데!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매 순간 즐겨야 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그러려고 이 여행을 시작한 것 아닐까?
그렇게 나는 산 크리스토발에서 한국에서 애써 준비한 여행계획서를 버렸다. 계획대로 여행이 되지 않을 거라고, 아니 계획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느리지만 천천히 여행하고 싶었다.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고 마음이 닿는 대로 보았고 눈길이 닿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눈에 띄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먹어보고 웃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말도 걸어보고 재밌어 보이면 구경도 해보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엽서가 한 장씩 나오는 것처럼 이 마을은 너무 예뻤다. 한참을 걷다가 쉬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어디서 옥수수 굽는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렸다. 길거리 좌판에서 아기를 업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굽고 있었고 나는 당장 하나를 주문했다.
옥수수를 검게 그을리 듯 굽고 마요네즈를 듬뿍 바른 다음 빨간 가루, 노란 가루, 하얀 치즈가루 등등 뭔가를 잔뜩 바르고 다시 굽다가 뿌려줬다. 단 돈 몇 백 원인데 정성스레 굽고 발라줬다. 냄새에 혼이 팔린 나는 낚아채 듯 옥수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세상에! 와...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고?
나는 정말 ‘미친 맛’이라고 표현해 주고 싶다. 평소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옥수수는 정말 미친 맛이었다. 느끼하고 맵고 짜고 시고 달고 온갖 자극적인 맛이 다 뒤섞여있는데 오묘하게 맛이 조화롭고 감칠맛이 상당하다. 거기에 숯불의 깊은 향과 고소함에 옥수수의 식감까지 더해져 뒤통수를 확 치고 내장을 한 번 후빈 다음 뇌 깊숙이 맛이 하나하나 새겨진다. 이건 천상의 맛이다!!!!
그날 나는 그 옥수수를 두 번이나 먹었고 그다음 날에는 아주머니가 멀리서 오는 나를 알아보고는 옥수수를 먼저 굽고 있었다. 떠나는 날까지도 그 옥수수가 생각났고 레시피를 배워올 걸 갖은 후회를 했다. 한국에 와서도 그 옥수수가 가끔 생각이 났다.
그러다 몇 년 후 이태원에서 비슷한 맛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름이 ‘마약 옥수수’였다. 이름을 듣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내가 그날 먹었던 맛의 충격이 이름과 너무 찰떡이구나! 남미에서 먹었던 옥수수맛을 따라올 순 없지만, 추억에 잠기기엔 충분했다. 뇌에 박힌 그 맛이 그리워서 레시피를 배워오지 않은 걸 다시 한번 후회했다. 내가 먼저 대박칠 수 있는 건데.
다음 날은 호스텔 동행과 함께 동네 뒷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 입구에서는 아이들이 물과 과일을 팔고 있었다. 10깨찰인데 함께 온 동행이 20깨찰을 주며 거스름돈은 가지란다. 10깨찰이 우리에게는 몇 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제법 큰돈이다. 나도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기특해서 팁이라 생각하고 돈을 더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어른들의 이런 행동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혹시 동정하는 마음은 아닐까?
이 마을은 우리나라의 7-80년대 수준에 머물러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아니 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 엄마도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시고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하셨다. 가발공장, 신발공장에서 일하셨고 떡장사, 머리핀 장사도 하셨다.
그런데 난 우리 엄마를 동정하지 않는다.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가난했을 뿐이었고 열심히 살았던 것뿐인데 그 누가 감히 동정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처럼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이 나라의 친구들에게도 충분히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고 미래를 책임 질 가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함부로 동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은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지 동정받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우리 엄마, 할머니라고 생각하니, 나는 마구 응원하고 싶었다. 동정한다면 너무 화가 날 것 같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미래가 우리보다 더 밝았으면 좋겠다.
옆에서 구두를 닦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샌들인데 괜찮냐고 하자 문제없단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천에 물을 묻혀가며 정성스레 내 샌들을 닦아주었다. 5분도 안되어서 흙먼지 가득한 샌들이 새것처럼 빛이 났다. 나는 제 값을 주고 아이에게 새 신발을 산 기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나이가 되면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것 같다. 그들의 미래가 희망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본다.
마지막 날은 마약 옥수수를 먹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안고 과테말라 안티구아로 향했다. 이제는 단순히 도시가 아닌 나라를 이동해야 한다.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보는 거라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만 보던 어마 무시하게 무서운 나라들의(특히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국경을 넘는 방법 자체는 대단한 건 없어 보였다.
일단 버스터미널에서 <안티구아행> 버스를 탔다. 도시가 아니라 국경을 넘는 버스인데 시외버스처럼 이정표만 하나 덜렁 붙어있다. 어떤 버스는 스쿨버스처럼 작고 이정표도 종이 위에 대충 써져있다. 안전하게 가고 싶은 마음에 가장 비싼 버스를 탔다. 내 목숨에는 돈을 아끼고 싶지 않다.
버스는 황량한 벌판을 한참이나 달렸다. 처음에는 남미 특유의 짙은 원색의 색감과 거친 듯 한 날 것 그대로의 풍경이 꽤 멋져 보였지만 똑같은 풍경을 몇 시간 째 쳐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은 그 어떤 범죄영화보다도 무서운 흉흉한 소문이 많아서 긴장이 되는데도 쏟아지는 졸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졸음을 쫓기 위해 가장 무서운 괴담 하나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국경 근처에서 사람 하나가 실종되었는데 장기는 다 팔아버리고 시신에 마약을 담아서 국경을 몰래 넘으려다 잡혔대'
'국경 근처에 흉악범들이 숨어있다가 버스를 통째로 납치해서 사람들 장기까지 다 털어간대'
하나같이 무서운 괴담들인데 정신이 들기는커녕 왜 이렇게 졸린 거지?
범죄수법 중에 버스에 수면가스 뿌려서 몸속에 숨겨놓은 여권까지 싹 다 털어간다던데! 나 혹시 수면가스 마신 거 아니야? 너무 졸려!
그런데 옆에 동행자는 태연하게 간식을 먹고 있는 거 보니 다행히 그건 아닌가 보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버스가 멈춘다. 이곳이 국경이란다.
다들 여권을 손에 쥐고 줄지어 내린다. 간판 하나가 전부인 이곳이 입출국 관리소라니, 내가 상상한 광경과 너무 달랐다. 섬처럼 갇힌 한국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게 입출국의 전부였으니! 대체 허허벌판 한가운데에서 어디서부터 국경의 끝이고 시작이라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입출국 도장을 받으려는데 심사관이 나에게 ‘북한이냐 남한이냐’ 질문을 했다. 남한이라고 대답하자, 왜 여권에 SOUTH가 없느냐고 물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북한도 여권에 NORTH라고 쓰여있지 않아, 그리고 내가 북한 사람이면 안되기라도 해?’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었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는 ‘no problum’ 이라며 도장을 찍어줬다. 다른 외국인이 말해주길 그렇게 시비를 걸어서 시간을 지체하면 대부분 뒷돈을 달라는 신호라는데 내가 너무 눈치가 없이 단호했다. 첫 국경 넘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긴장감이 무색할 만큼 쉽고 간단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넘겼으니 감사한 일이다.
'막상 부딪혀보니, 별 것 아니었네'
생각해보니 나는 참 겁이 많은 사람이다. 잔뜩 겁을 먹고 한껏 몸을 사렸지만 대부분 별 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똑같은 상황이 오면 또 겁부터 먹는다.
오늘 국경을 넘은 것처럼.
소문처럼 위험할 것 같았지만 사실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비행기가 아닌 육로로 국경을 넘어보는 첫 경험인데. 좀 즐겼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 위험하다고 소문난 멕시코 여행은 말해 뭐해! 위험하긴 커녕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니까 일단 해 봐! 별 것 아닐 테니까.
일단 부딪혀 봐! 행복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