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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3. 2022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무려 40여 시간을 달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발아래로 반짝이는 도시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 공항은 신기하게도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착륙 전부터 멕시코시티 전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데 마치 시티투어 예고편을 보고 있는 것처럼 설렜다. 

 깜깜한 밤하늘 속의 멕시코시티는 마치 빼곡히 박힌 반딧불처럼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해서 도대체 어떻게 이 나라가 무섭고 위험하다는 것인지 하나도 믿기질 않았다. 묘한 흥분과 혹시 모를 두려움 속에 서둘러 공항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했다. 

멕시코시티에는 비싸지만 가장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공항 택시가 있다. 나와 기사의 인적사항, 탑승한 차량정보까지 모두 공항에 등록되기 때문에 늦은 밤에라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 무시무시하다는 멕시코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멕시코시티의 공기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는 데다 멕시코의 밤이 너무도 생소하고 낯설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지난밤 내내 아침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창문 너머에는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파아란 하늘과 한눈에 다 담기도 힘든 웅장하고 거대한 크기의 멕시코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내가 지금 이 도시를 실제로 마주하고 있다니.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어, 내가 해냈다고!”     


 이제 겨우 첫 나라, 첫 도시에 도착했을 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부터 나 자신이 너무 뿌듯하다.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 자꾸만 웃음이 났고 저절로 신이 났다. 어마 무시하다는 멕시코시티를 한밤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치솟았다. 

 시티에서의 첫날, 제일 먼저 숙소 앞 소깔로 광장으로 향했다. 남미의 어느 도시를 가든 ‘소깔로 광장’이 있는데 쉽게 ‘번화가 중심’ ‘중앙광장’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소깔로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멕시코 대형 국기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는데, 해가 쨍쨍한 대낮에는 기다랗게 드리운 국기봉 그늘 아래가 사람들의 쉼터가 될 정도였다. 

 신기하고 매력 넘쳐흐르는 멕시코지만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건 단연 지하철이었다. 일단 300원도 안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놀랐지만 신기했던 건 지하철역 이름이었다. 행선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선도를 살폈는데 지하철역이 모두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피라미드, 태양, 메뚜기, 용머리 등등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이는 멕시코인들의 문맹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모두의 편의를 고려해 지하철역을 그림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인데 스페인어가 낯선 여행객들에게도 매우 유용했다. 

 나는 특히 메뚜기 역(차뿔떼빽 역)에 자주 갔는데 그곳에는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모두 볼 수 있는 '인류학박물관'(뛰어다녀도 하루 안에 다 못 본다. 정말이다!), 차뿔떼뻭공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동물원이 있기 때문이다. 구경할 게 너무 많아서 4일 내내 갔다.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사들고 차뿔떼빽 공원에 앉아서 비를 기원하는 멕시코 전통의식인 ‘볼라도레스’도 공짜로 관람했다. 의외로 시티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과 전시가 많았다. 풍성하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있고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유물로 가득한,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친절하고 흥 많은 시민들로 붐비는 상당히 멋진 도시가 바로 멕시코시티이다.

 멕시코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어마어마한 나라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피라미드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은 이집트가 아니고 바로 멕시코! 역동적인 태평양과 로맨틱한 카리브해 이 상반된 매력의 두 바다를 모두 가지고 있는 축복받은 곳이다. 음식도 문화도 훌륭하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우리와 닮은 점도 참 많은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 1위가 멕시코, 2위가 우리나라다. 일에 치여 사는 것도 비슷한데, 어쩜 이렇게 술도 좋아하고 잘 노는지, 우리가 사는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또한 그들은 친절하고 쾌활하고 예의도 있으면서 유머러스했다.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우리와 같은 침략의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려 2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스페인에게 침략 당해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역사도 끔찍한데 240년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멕시코 대성당 뒤로는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문박물관’이었다. 어릴 적 독립기념관에서 일본군에게 고통스럽게 고문받는 고문실을 보고 크게 충격받은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곳에서의 고문방법도 매우 흡사해 소름이 돋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토속신앙이 깊은 원주민에게 십자가를 들이밀며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모습이다. 물레방아 아래 불을 지펴놓고 사람을 메단 후 천주교로 개종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물레방아를 돌려 통구이로 만드는 고문은 정말로 너무 끔찍해서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곧 통구이가 될 원주민 옆으로 십자가를 들고 천주교를 전도하는 신부의 이중성을 차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너무나 끔찍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멕시코시티 소깔로 광장에는 매우 아름다운 멕시코 대성당이 있다. 약 240년에 걸쳐 만들어진(그들이 침략당해온 그 시간만큼) 성당답게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 화려한 유럽 건축양식이 모두 집약되어 있어 “건축 갤러리”라 불리며 ‘아메키라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온몸을 휘감는 경건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나도 모르게 (종교와 상관없이) 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나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용기와 사랑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신기하게도 나도 모르게 두 단어만이 그냥 머릿속에 딱 떠올랐다. 순간 엄청난 크기의 파이프오르간에서 울리는 웅장한 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남미에서만 볼 수 있는 검은 예수상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성당 아래로는 멕시코의 고대 유적지인 ‘아즈텍 신전’이 잠들어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자마자 고대 신전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성당을 세운 것인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은 고대 유적지가 발견되었음에도 성당을 없애지 못해 현재까지도 고대 유물을 온전히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영혼을 밟고 서 있는 저 성당 안으로 신들을 만나러 간다.


 고문실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던 신부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안타까움은 꽤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우리나라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처음에는 그들을 이해 못 했다. 비교하자면 경복궁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일본 사찰을 지었다는 것인데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라 가치 있는 훌륭한 역사보다 자신들의 현재(종교)를 선택한 그들이 사뭇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을 이어갈수록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점점 더 알아갈수록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240년의 세월은 생각보다 많이, 아픔도 잠식시킬 만큼 아주 많이 길다는 것을.  


마치 어릴 때의 나처럼.

나와 내 친구 정아(가명)는 똑같이 끔찍한 아빠를 두었지만 우리는 완전히 다른 가족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여름 무렵 친구 여럿이 모여 정아네 집에 놀러 갔다. 정아 어머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너무나 환한 얼굴로 없는 반찬이지만 많이 먹으라며 한 상 가득히 차려주셨다. 식당일을 하신다더니 음식 솜씨가 훌륭하셨다. 

'우리 딸 친구들이 와줘서 너무 즐겁다'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미소에는 정말로 행복함과 기쁨이 묻어있었다. 아무래도 매일 밤마다 엄마가 아빠 폭력에 시달린다던 정아의 말은 거짓말 같다. 한참을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는 중에 정아네 아버지가 시끄럽게 들어오셨고 마치 우리 보라는 듯이 어머니를 마구 짓 밞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화난 이유는 식당에서 번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과 별 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정아네 어머니는 너무 밝고 강한 분이셨다. 우리 앞에서 짓밟히는 그 순간에도 끝까지 웃으시며 신경 쓰지 말고 밥 다 먹고 놀다 가란다. 눈물이 핑 돌아 목이 멘다. 

아버지가 매일같이 동네 떠나가라 깽판을 쳐도 식당일을 그만두지 않으셨고 어떻게 서든 아버지 몰래 돈을 모아서 정아 학비에 보탰다. 어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정아는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고 성격도 나와는 다르게 밝고 사교적이었다. 정아의 꿈은 얼른 돈을 모아서 엄마와 함께 살 집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엄마라 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박혀 한숨 가득 신세한탄을 하고, 주름 가득 인상 쓰고 있는 무기력한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그 순간 번쩍! 

어쩌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근사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정아는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겠구나. 

저 친구에게는 살아가야 할 이유와 희망이 있구나.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 해서 같은 모습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되돌리려 했다면, 그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버려서 그저 일상처럼 아픔이 무뎌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240년이라는 세월은 기억도 아픔도 잠식시킬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오랜 시간이니까. 어쩌면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화를 냈던 내가 창피했다.

그들과 같은 아픔을 가졌기에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으면서, 나는 왜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러니 세상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이유가 없다.

 

 어릴 적 내 주변에는 언제나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검은 유혹의 손길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같은 처지의 친구들 중에는 학교를 그만둔 친구도, 나쁜 길로  빠진 친구도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짊어진 친구도 있다.

그들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으며 불법이 아니라고도 했다. 늘 돈에 쪼들렸던 나는 가끔 흔들렸다. 그런데 그때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건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만약에 잘못되어서 경찰서에 가게 되면 어쩌지?’

경찰서를 다녀와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친구의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나도 모르게 나쁜 상상을 해보았다. 경찰서에 있는 나를. 

그런데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부모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딸이 될 것이고, 너를 구할 돈은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방치할 게 뻔했다.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못할 게 확실했다. 그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구나’

‘그러니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구나’     


나는 친구들의 모든 유혹을 거절했고,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로 독하게 버텼다. 여전히 난 가진 게 없고 초라하지만 그때의 난 참 잘한 게 맞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아동복지사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아무도 비빌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아들은 본능적으로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탈선하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먼 친척이든 지인이든 비빌 곳이 있는 아이들이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더 반항하고 삐딱하게 나가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딱 그랬다. 심지어 나는 고아도 아닌데. 

늘 아무도 비빌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은 덕분에 친구들의 달콤한 유혹과 꼬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분명 내가 대견하고 멋진 아이가 맞는데 그 글을 읽고 밤새 얼마나 오열했는지 모른다.     

같은 아픔을 가졌지만 나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 내 친구들처럼 남미의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는 똑같이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아픔을 견뎌내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고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우정은 더 단단해지고 사랑은 더 달콤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존중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그것은 갈등의 불씨가 되고 결국 상처로 남을 것이다. 

내가 멕시코인에게 

“너희는 왜 저 성당을 부시지 않니? 너희들의 역사가 얼마나 훌륭한데 어서 발굴해서 저평가된 너희들의 역사를 보여줘 ” 

라고 말했다면 그들이 마냥 기뻐했을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절대적인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 여행 역시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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