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표류기(Drift)이기도 리부트(Reboot)이기도 한...
고등학교 프랑스어 수업시간,
암막이 쳐진 교실에 슬라이드 프로젝터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린다.
찰칵찰칵 소리와 함께 파리의 풍경이 이어지다 갑자기 교실 가득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이 퍼지더니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가 나타났다.
친구들은 얕은 탄성을 내뱉었고 난 처음으로 꿈이란 게 생겼다.
'나... 교량을... 만들고 싶어 졌어'
어학원의 새벽 첫 수업을 듣고 곧장 현장사무실로 향한다.
짧은 체조 후 이내 작업복에 안전모, 안전화를 착용하고 낚싯배에 오른다.
방파제가 없는 탓에 공사지점까지 가는 동안 너울이 몰아친다.
뱃멀미가 속에서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참아야 한다.
'건설현장에 들락거리는 여자'를 혐오하는 작업 인부들이 '내가 구토하기'만 하면 잡아 뜯을 듯 지켜보고 있다.
바다 중간에 위치한 공사 현장에 도착하니 벌써 일본 大林組(오바야시쿠미)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노트와 연필을 챙겨 들고 메모를 하면서 통역을 시작한다.
막히는 전문 용어는 한자로 필담을 해가며 통역을 이어간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 기억은 없다.
와이어 줄 하나에 의지해 스트럿(Strut Beam) 위를 걸으라~ 메모하랴~ 통역하랴~ 정신이 없던 탓이다.
오후엔 본사 설계사무실로 출근한다.
구조계산을 하고 도면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반주를 곁들인 회의 겸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면 어느덧 10시.
낮에 통역하면서 막혔던 전문 용어들은 두 번의 실수가 없도록 정리한 후에, 이적의 별밤을 들으며 전공 서적을 펼쳐 내 공부를 시작한다.
내가 참여한 첫 대형 토목 프로젝트는 부산 광안대교 주탑 설계였다.
안전모에 머리카락이 눌려도,
도저히 쉴 구멍이 없는 하루 스케줄이 몇 개월 동안 이어졌어도,
'아침부터 여자가 와서 재수 없다'며 현장 인부들이 내뱉는 볼멘소리를 들어도,
저녁 식사 때마다 소주를 수없이 따라야 했어도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내가 원하던 꿈을 이루어 가고 있었고, 난 젊고 아름다웠으며, 야망과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이십 대였다.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데, 난 문득문득 그때의 내 모습을 꿈에서 마주한다.
나의 이십 대가 환영처럼 느껴진다.
.
.
.
결혼, 출산, 육아 버티다 버티다 결국 퇴직
내 꿈을 다시 찾고 싶었다.
대학원을 가고 강의를 하고 기술사 공부를 했다.
프리랜서로 번역과 설계를 하며 이 분야의 감을 놓치지 않으려 계속 노력했다.
하지만, 번역일은 똑똑한 기계가 대신했으며, 토목분야엔 더 이상 나 같은 프리랜서는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여자는 필요 없었다.
나를 충분히 증명할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런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
.
.
난 유한마담(有閑madame)이다.
언제든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고,
아트페어를 쫓아다니며 작품들 컬렉팅을 하며,
파도 좋은 곳으로 한 달 내내 서핑을 즐기러 갈 수 있는.
그런데 그게 뭐!
유한마담이 성공한 삶이라 착각하는 건 아닌지.
남편의 지위가 자신의 계급이라 착각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