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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rmann Husse Feb 07. 2024

00 Prologue...

쉰 살이 되면 죽기로 했다

수면내시경 검사를 위해 간이침대에 눕는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목이 쎄해지는 순간 부러 숫자를 센다.

일, 이, 삼, 사... 몇 초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대로 그냥 죽었으면...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는 죽음도 특별히 힘들지 않다. - 'The Myth of Susyphus' Albert Camus




속된 말로 꺾어진 백 살,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맞이하는 나이 듦이 싫어서, 쉰 살이 되면 죽기로 했었다.

근데 만 나이가 도입되어 내 생명이 연장되었다.

그렇게, 비관적 염세주의자에게 2024년 12월 21일까지 죽음이 유예되었다.





유서를 적어 책으로 만들어 두었다.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에게...


사람 참 잔인하지.






이 나이가 되면 숫자가 주는 공허함에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이삼십 대 때에는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 '나도 저렇게 멋지게 살겠노라' 자기 다짐을 하며 노력해왔기에 후회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바심이 생겼다.


어떤 이는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코인으로 부자가 되어 성공했다며 자신의 성공 비법을 팔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라 매일 글을 쓰라 '나는 할 수 있다' 천 번을 쓰며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이는 새벽에 일어나라 잠을 줄여라 달려라 지금 핸드폰 보고 있는 당신은 루저라고 하니


젊었을 때에는 부단히도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오기가 생겼고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성공하기 위해 나에게 가하는 채찍질마저 행복했는데,

나이 들어 받아들이는 감정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상실감이다.




난...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구나.

난...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했구나.

성실하게 잘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그게... 실패라는 거구나.




또 그러겠지. 내 마음의 문제라고.

그리곤 나에게 함부로 조언이랍시고 행복 위로 공감 희망이란 단어를 떠벌리겠지.


제발 그만

다그치지 말아 달라.

이미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삶을 대하는 당신의 철학과 돈에 대한 가치와 당신이 말하는 성공의 척도를 함부로 타인에게 강요하지 마라.




온통 돈과 성공 자기 계발뿐인 서점 매대를 본다

순간 공황이 와서 털썩 바닥에 쭈그려 앉는다.

사람들이 괜찮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공허한 눈에서 나온 눈물이 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눈물이 난 것도 모른 채 그저 가쁜 숨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어 흐르는 그 사람 주변의 공기는 더없이 버겁고

그 사람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23년 10월 22일, 블로그에 표류기를 적기 시작했다.

유예된 죽음, 그 기간만큼 뭐든 적어보자.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다 보니

문득

1년이면... 무언가를 이루며 멋지게 나이 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만약 그 일을 다 이루지 못한 채 생과 작별을 하면 그동안의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가.



앞으로 얼마나 자기의심의 시간들을 거쳐가야 할까...


하지만, 희망한다.

나의 글쓰기가 지금은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질 않기를..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단지 방향을 못 잡아서 그걸 일기에 쓰고 있는 것이죠.

나에 대한 애정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에요.

- 법의학자 '이 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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