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 Nov 23. 2022

하루만에 백수가 되었다

글감은 넘쳐나서 좋네...


월요일에 퇴사 권유를 받은 뒤 집에 돌아와, 아래 글을 쓰고 새벽 3시에 잠들었다.


https://brunch.co.kr/@learnandrun/42


그런데 그다음 날인 오늘(정확히 말하면 화요일), 하루 만에 백수가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당장 회사 나가세요! 월급도 이제 못줘요! 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장 오늘부터 이력서를 쓰고 다른 회사에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20살부터 늘 플랜B가 준비된 상태에서 결정과 선택을 반복했다. 전과를 하고, 군대를 가고, 편입학을 하고, 유학 준비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회사에 들어가고,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고. 성공했든 실패했든 늘 플랜B가 있어서 나름 쉬웠다. 하지만 오늘처럼, 대안이 없는 채로 백수가 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백수가 된 토끼. 아니 나...




동료들은 오늘 오전에 대표와 1대1 면담을 했다. 나는 점심 약속이 있어서 오후에 면담을 하기로 했다. 대표와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 모른 채로 1시가 넘어 회사에 복귀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대표와 면담을 시작했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시장이 너무 안 좋네요..."


결국 어제와 같은 말이었다. 이 회사에 남을지, 떠날지의 선택권을 내가 쥐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물론 나도 떠나려고는 했다. 그 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을 뿐. 다행히 개발 중이던 코드를 정리할 시간, 다른 회사를 알아볼 시간은 충분히 준다고 했고 그때까지는 회사에 나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대표가 필요하면 다른 회사를 알아봐 준다고 했다.




그날은 동료들과 조금 일찍 퇴근했다. 우리 셋 모두 사실상 백수가 되었다. 다른 동료 둘은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당분간 쉰다고 했다. 나는 쉴 필요는 없었다.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다시 열심히 성장을 위해 노력을 다할 수 있는 회사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닥치는 대로 채용 중인 블록체인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로 했다. 


그동안 참 쉽게 살지 않았나 싶다. 대학원도 회사 공채와 비교했을 때는 훨씬 쉽게 들어갔고, 대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산학 장학생이 되어 회사 취직이 결정되어 있었다. 이번 스타트업도 지인을 통해 형식적인 면접 없이 대화만으로 시작했다. 쉽게 회사에 들어와 쉽게 돈을 벌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AI에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6개월 만에, 다른 회사들을 알아보고 각 회사에 맞는 이력서와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블록체인 개발 경력은 6개월밖에 안 되므로 10개 정도 되는 회사에 지원해도 소수만 붙을 거고 그중에서 가장 잘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골라야 한다. 아니, 사실 오라는 곳이 한 군데만 있어도 감사히 가야 하긴 한다. 




불안한 상황임은 맞지만,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나는 오늘 백수가 되었지만, 같이 백수가 된 3인방과 이렇게 된 김에 셋이서 해외여행이나 가자고 실실 거리며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막상 백수가 되니 기분이 좋기도 했다. 34살에 맛보기 힘든 달콤한 자유가 주어진 느낌이랄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자유로움 속에서 바쁘게 달리기로 결정했다. 회사가 아닌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이력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심심하면 책을 읽어야겠다. 그러다 찌뿌둥하면 헬스도 하고 대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산책을 하려고 한다. 이게 백수만의 특권이니까. 


이번주부터 이력서를 쓰기 시작하면 다음주에 얼마나 연락이 올까, 면접은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을까, 내 연봉은 어떻게 될까. 내 거취에 대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이전 07화 상큼한 월요일, 대표의 퇴사 권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