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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Nov 21. 2022

상큼한 월요일, 대표의 퇴사 권유

월요병을 느낄 새도 없이 찾아온 대표의 퇴사 권유

"초반에 팀을 꾸리고 운영하던 시기와 시장이 너무 달라져서 애석하고 아쉽습니다. 내년 로드맵을 그려봤을 때 쉽지가 않네요."



전쟁과 미국 금리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 및 주식 시장 침체. 우리 모두 체감하고 있는 경제 위기지만 블록체인 업계는 조금 더 영향이 컸다. 기존 금융 시장의 악재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코인 업계에 역대급 악재가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가겠다고 마음 먹고, 다니던 회사에 퇴사 통보한 날짜가 올해 4월 29일이었다. 그리고 '루나 사태'5월 12일에 터졌다. 그 이후로 6개월 뒤인 11월 12일, 'FTX 사태'가 터졌다. FTX는 세계 최대 코인 거래소 중 하나다. 핵폭탄급 악재 2개로 인해, 블록체인 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기업 - 특히 우리 회사처럼 5인 미만의 스타트업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블록체인 유저들은 떠나가고 투자자들은 주머니를 닫았다.





그리고 11월 21일 월요일.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사무실에는 내가 가장 일찍 출근해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대표가 들어왔다. 대표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난 뒤 내게 말을 걸었다.


"상하 안녕하세요, 잠깐 시간 되시면 면담하실까요?"


입사하기 전에 면접 형식의 1대 1 면담을 제외하면, 입사하고 나서 단 둘이 면담을 했던 적은 없었다. 따라서 대표의 면담 요청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중대한 사항임은 분명했다.




내가 먼저 회의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대표도 곧이어 들어와 따라 앉았다. 그리고 대표가 말을 꺼냈다.


"올해 들어 블록체인 쪽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초반에 팀을 꾸리고 운영하던 시기와 시장이 너무 달라져서 애석하고 아쉽습니다. 내년 로드맵을 그려봤을 때 쉽지가 않네요."와 같은 말이 이어졌다.


공감하는 바였다. 운이 너무 없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 팀은 기술에 특화된 팀이었고, 시기만 잘 받쳐줬으면 큰 투자를 받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진 팀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팀 능력 밖이었다.


대표가 조금 뜸을 들인 후에 조심스레 의중이 담긴 얘기를 꺼냈다.


"상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팀에 남으셔도 되고, 다른 행선지로 노선을 갈아타셔도 됩니다. 어느 경우든 상하가 최고의 결정을 할 수 있게 마지막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른 행선지로 가신다면 제가 여러 회사를 알아봐 드릴 겁니다. 그리고 팀에 남으시겠다면, 지금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입사 때 얘기했던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야근도 자주 할 수 있고, 주말 출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를 믿고 처음부터 합류해주셨으니 상하에게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힘든 상황이니 단순히 열심히 해달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만큼 재정 상황과 시장이 안 좋으니, 퇴직 권유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최근 한 달 동안 나도 마음이 복잡하긴 했다. 개발하는 시간보다 회의하는 시간이 많았고 공들여 기획한 아이디어가 하루 만에 180도로 바뀌기도 했다. 똑같은 회의가 반복되다 보니 지치기도 했다. 또한 대표 한 사람에게만 너무 과중한 업무가 몰린 것도 걱정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하였으나, 대표는 혼자 리서치를 하고 발표자료도 만들고 투자사와 미팅도 하고 출장도 가고 개발도 하고 우리와 회의도 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해냈다. 대표의 말을 다 듣고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지금 당장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최대한 많이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까지 답해드릴게요. 저한테 일방적 통보가 아닌 선택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 컴퓨터 책상에 앉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글로 정리하며 내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있다.


참, 세상이란 게 생각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당장 내년이 아니라 한 달 뒤 12월에는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이번주는 어떻게 될까?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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