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다음 장을 준비하는 당신에게-014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선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눈가에 주름이 자리 잡았고, 입사동기들의 빈자리가 하나둘 늘어났다.
디자이너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 15년.
이제 나는 '시니어'라 불린다.
하지만 시니어라는 이름표가 주는 무게감보다 더 무거운 건,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질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달려왔다.
앞만 보고 가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방향마다 다른 미래가 펼쳐져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선다.
시니어가 된다는 건, 단순히 경력이 쌓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디자이너로서 잘하면 된다'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면, 그 단순함은 사라진다.
계속 현장에서 디자인을 할 것인가?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될 것인가?
전혀 다른 직무로 전환할 것인가?
독립해서 나만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것인가?
이 모든 질문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각각의 선택이 완전히 다른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미래들, 어떤 길이 있을까?
"나는 평생 디자이너로 살고 싶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관리나 전략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IC(Individual Contributor) 트랙이라 불리는 이 길은,
매니지먼트 없이 순수하게 전문가로 성장하는 경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회사에서 관리자 역할을 요구하고,
순수 디자이너 포지션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도 이 길을 선택한 정민이라는 선배가 있었다.
그는 40대 중반까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처음엔 불안했어요. 주변 동료들은 다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데,
나만 여전히 디자이너였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관리가 아닌 창작이 좋았어요.
그래서 프리랜서로 전환했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프로젝트만 골라서 해요.
수입도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요."
"이제는 팀을 이끌고 싶어."
디자인 매니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DO(Chief Design Officer).
시니어의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처럼 보이는 이 길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디자인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을 이해하고, 조직을 운영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수진이라는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팀장이 되고 나서 깨달았어요.
내가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 팀을 잘 이끄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걸.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기쁨은 줄었지만,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뿌듯해요."
하지만 모든 디자이너가 리더에 적합한 건 아니다.
관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억지로 그 길을 가는 건 고통일 뿐이다.
"디자인만으로는 한계가 보여."
어떤 이들은 인접 직무로 전환한다.
프로덕트 매니저, 서비스 기획자, BX 전략가, 심지어 개발자로.
디자인 경험은 이런 직무에서도 큰 강점이 된다.
사용자를 이해하고, 시각적으로 사고하고, 전체 경험을 설계하는 능력은
어디서든 빛을 발한다.
민호라는 선배는 12년 차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환했다.
"처음엔 두려웠어요. 지금까지 쌓은 디자인 커리어를 버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버리는 게 아니었어요.
디자인 관점을 가진 PM은 시장에서 정말 귀해요.
제품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니까 오히려 디자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이제는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회사를 나와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리거나,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길도 있다.
자유롭지만 불안정하다.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 하지만, 모든 결정권도 내게 있다.
혜진이라는 친구는 15년 차에 독립했다.
"회사에서 하는 디자인은 항상 타협이었어요.
클라이언트 요구, 상사 의견, 마케팅 부서 피드백...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은 할 수 없었죠.
그래서 독립했어요.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일감도 없고, 수입도 불안정하고.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만 하고 있어요.
수입도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늘었고요."
"디자인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완전히 다른 분야로 떠나는 것이다.
디자인 교육자, 작가, 창업가, 심지어 전혀 다른 업종으로.
이 길은 불확실성이 가장 크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가장 크다.
이 많은 길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쩌지?"
"지금까지 쌓은 걸 잃으면 어쩌지?"
불안함도 있다.
"내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해도 될까?"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이미 그 분야에서 잘하고 있는데..."
죄책감까지 든다.
"지금 자리가 나쁜 건 아닌데, 욕심인가?"
"안정을 버리는 게 무책임한 건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설렘도 있다.
"새로운 가능성이 보여."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우리는 밤잠을 설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내 미래를
현명하게 설계할 수 있을까?
미래를 설계하는 구체적인 방법
먼저,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질문해보자: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가?
이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노트에 적어보고, 혼자 산책하며 생각해보고,
신뢰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눠보자.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작은 실험을 해보자.
PM이 궁금하다면?
주말에 프로덕트 관련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자.
현직 PM과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눠보자.
프리랜서가 궁금하다면?
주중엔 회사 다니면서, 주말에 작은 프로젝트를 받아보자.
실제로 혼자 일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보자.
독립이 궁금하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로 작은 스튜디오를 시작해보자.
고객을 직접 응대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해보자.
이런 작은 실험들이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혼자 고민하지 말자.
이미 그 길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간 사람을 찾아서
커피 한 잔 청해보자.
"어떻게 그 결정을 내리셨나요?"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다시 선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런 진솔한 대화가 큰 도움이 된다.
현실적으로, 돈 문제도 중요하다.
전환 기간 동안 수입이 불안정할 수 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치 생활비를 미리 준비해두자.
독립을 고려한다면 초기 투자 비용도 계산해야 한다.
스튜디오 운영비, 장비비, 마케팅 비용 등.
현실적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서연은 13년간 UX 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가르치는 게 더 좋아."
그녀는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마다 디자인 강의를 시작했다.
1년 후, 수강생이 늘어나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서웠어요.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는 게.
하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게 즐거워요.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차요."
준호는 15년간 브랜드 디자이너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제품 회사를 차렸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만든 생활용품 브랜드였다.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지금 3년째인데, 아직 큰 성공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쓰는 걸 보면 뿌듯해요."
민지는 10년간 UI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점점 디자인 너머가 궁금해졌다.
"전체 서비스를 설계하고 싶어."
그녀는 회사 내에서 직무 전환을 시도했다.
처음엔 거절당했지만, 꾸준히 설득하고
PM 업무를 병행하며 역량을 증명했다.
2년 후, 그녀는 공식적으로 프로덕트 오너가 됐다.
"디자인 경험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사용자 관점으로 서비스를 바라보는 눈은
다른 PM들이 갖지 못한 저만의 강점이에요."
시니어 디자이너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력이 쌓인다는 건,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경험이 있기에 어느 길로든 갈 수 있다.
두려워 말자.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 경험과 역량으로, 어떤 미래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그래도 선택이 어려워요."
알아. 그 마음 정말 잘 안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하자.
완벽한 선택은 없다.
어떤 길을 가든, 후회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후회가 된다.
중요한 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드는 것'이다.
동료 디자이너여,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꿈꾸는 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듯,
앞으로 갈 길도 의미 있을 것이다.
천천히 생각하되, 용기 있게 선택하길.
작게 시작하되, 꾸준히 나아가길.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 나누길.
당신의 다음 장을 응원한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은 멋진 디자이너이자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동료이자 응원자다.
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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