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이 앞 인간의 가장 오래된 대답

[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 18, 251002

by 이음바다

양념 자율권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나는 나흘 만이지만 아내와 아들은 이 호텔 조식을 계속 먹어왔다. 아내가 먹어봤던 메뉴 가운데 맛있었던 식사를 골라줬다. 닭고기로 국물을 낸 국과 밥이다. 며칠 만에 아침을 든든하게 시작하게 됐다. 이제는 익숙해져 가는 발리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챙겼다.


발리 음식은 많이 짜거나 맵지 않다. 특유의 향이 있기는 하지만 담백한 편이다. 아들도 처음부터 이곳 음식을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대신 다양한 양념을 함께 준다. 본인 입맛에 맞춰서 더 넣어 먹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당들은 언젠가부터 더 짜고 더 맵고 더 달아졌다. 슴슴한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 입맛에는 오히려 발리의 음식이 입에 맞는 부분도 크다. 한국의 식당에도 양념의 자율권이 돌아왔으면 한다.


마지막 수영 레슨


아들의 수영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10분 일찍 수영장에 와서 준비를 시작하셨다. 아들은 역시나 장난 반 연습 반 수업에 임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다섯 번째. 약 3주에 걸친 다섯 시간의 레슨이었다. 눈에 띄게 확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아들의 수영 실력은 좋아졌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수영에 재미를 붙인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제 아들은 어느 수영장이나 바다에서도 전보다 과감하게 물에 뛰어든다. 레슨을 마치며 선생님께 여러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설프지만 접영킥도 할 줄 안다

약속을 미리 지키다


이날은 두 번째 호텔 체크아웃 날이기도 했다. 이제 사누르 해안가를 떠나 덴파사르로 이동한다. 10여 일간 가까이 두고 지낸 아이콘발리와 멀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레고스토어를 다시 오기 힘들다는 말도 됐다. 아들에게 한 달 살기 초반에 던져버린 약속을 미리 지키기로 했다. 사누르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일지 모르는 아이콘발리 방문이었다. 약속을 못지킬지도 몰랐기에 중간 결산을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술수업에서 만들어온 두 개의 만들기를 가방에 다 넣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모습으로 한국으로 가져가기도 쉽지 않았다. 레고 선물을 일찍 사주면 만들기들은 사진을 찍어 남기고 발리에 두고 가자고 제안했다. 아들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레고스토어로 들뜬 발걸음을 옮겼다.


레고 고르기에서 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최후의 결정을 받은 상품을 집어 들었다. 아들은 오후 내내 레고 상자를 들고 다녔다. 대체 언제 조립할 수 있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었다. 나는 약속을 미리 지켰으니 남은 기간 떼쓰지 않고 잘 지내겠냐는 다짐을 시도 때도 없이 받아냈다.

레고를 손에서 놓지 안았다

5개의 슈트케이스를 싣고


체크아웃에 맞춰 발리섬 서부 짱구와 따나롯 사원을 둘러보는 투어를 신청해두기도 했다. 많은 가방을 투어 차에 싣고 다니며 여행을 다닌 뒤 새 호텔에 편하게 들어가려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아들이 수영 수업을 하는 동안 짐 정리를 마무리했다. 점심식사와 레고 구입 뒤 투어 픽업차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5개의 슈트케이스를 차에 싣고 투어를 시작했다.


카페와 옷 가게를 들리며 힙한 동네 짱구에서 두 시간 남짓 머물렀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따나롯 사원으로 향했다. 따나롯 사원은 해안 절벽에 세워져 있다.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다. 부산 이기대나 제주도 섭지코지 같은 느낌의 해안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사원과 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따라 걸었다.


꽤 긴 거리였는데 아들은 내내 신나 하며 잘 따라왔다. 레고가 도파민을 폭발시켜 버렸기 때문인가 싶었다. 갑자기 태권도가 떠올랐는지 잔디밭에서 한동안 품새와 겨루기 삼매경에 빠졌다. 바다에서 혼자 파도를 타는 서퍼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갑자기 태권도를 시작한 초록띠 어린이

자연의 경이 앞에서


따나롯 사원은 붉게 변한 하늘과 바다 사이 떠 있듯 자리 잡고 있었다. 발리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답고 신비한 경관을 보고 신을 떠올렸나 보다. 자연스럽게 사원을 지어 기도를 올리고 평화를 기원하게 된 것이겠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자연의 경이를 맞이하면 초월적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동안 여행을 다닌 여러 곳에서 만난 사원이나 절, 교회를 떠올랐다. 따나롯 사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의 장엄함에 대한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지는 바다와 사원을 배경으로 찰칵찰칵

크고 긴 수영장이 있는 곳


이번에도 사진을 잘 찍어주는 투어 업체의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덕분에 많은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해지고 어둑어둑한 저녁 덴파사르 외진 곳의 우리가 묵을 세 번째 호텔에 내렸다. 이곳에서 숙박을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크고 긴 수영장이 있기 때문. 머무는 동안 멀리 다니거나 많은 일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한 달 살기의 휴식 기간으로 삼고 호캉스를 즐긴다는 마음가짐으로.


아들의 기대가 컸다. 크고 긴 수영장에서 얼른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누르에 머무는 동안 큰 수영장 호텔은 언제 가냐고 자주 물었다. 체크인 뒤 바로 수영장에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짐을 풀자마자 아들은 레고 상자를 뜯고 조립을 시작했다. 이 날의 여행의 끝은 “아빠, 여기 이거 안 맞아”였다.


바다와 노을이 더 아름답도록 멋진 사원을 세운 발리인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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