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 19, 251003
한 달 살기가 종반부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이 늘어난다. 영어 수업도 이번 시간으로 끝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수업에 한 시간 반. 모두 12시간을 함께했다. 아들은 여전히 영어로 입을 떼는 횟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첫 수업보다는 늘었다. 영어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꽤 보였다. 사실 아들의 수업 태도는 좋지 않았다. 여섯살이 한시간 반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수업을 마쳤다.
아들이 영어 수업보다 좋아한 것은 선생님이다. 선생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아들은 짐을 뒤졌다. 선생님께 선물을 주겠다며. 김 여러 봉지를 들고는 좋은 선물을 골랐다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생님을 위해 챙겨뒀다.
선생님도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 예쁜 색연필과 자. 아들은 최근 숫자놀이에 부쩍 재미를 붙였다. 길이를 측정하고 크기를 비교하는 것을 신기해했다. 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집에는 적당한 녀석이 없었다. 안 그래도 하나 구입하려던 참이었다. 딱 필요한 것을 선물 받은 것이다. 자가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들은 온갖 것의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휴대폰, 물병, 스케치북, 물컵, 색연필 등등등. 아쉬운 작별의 시간. 선생님과 수업이 아니어도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영어 선생님은 아들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기억하는, 발리에서 만난 사람의 이름이다. 땡큐, 티처 위다리!
한 달 살기 종반부에도 인생 첫 경험은 계속됐다. 수영장과 해변을 벗어나 조금 더 먼바다로 향했다. 아들의 인생 첫 스노클링이다. 더 맑고 예쁘다는 바다도 좋지만, 가까워 접근이 좋은 사누르 해변을 택했다. 해변으로 이동하는 길부터 아들은 들떠 있었다. 물고기들을 진짜 바다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준비를 마치고 작은 배로 해안을 벗어나 바다로 출발했다. 5분 정도의 이동.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의 긴장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걱정하는 아들을 위해 내가 바다에서 손을 계속 잡고 있어 주기로 약속했다. 수심 5미터 정도의 지점에 배가 멈췄다. 내가 먼저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입수하는 아들을 받아 안았다. 안정을 찾은 뒤 물속을 보라고 했다. 고개를 잠시 숙인 아들은 자신 아래를 지나는 수십 마리의 물고기를 봤다. 바로 얼굴을 치켜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와우!" 입이 귀에 걸릴 듯이 크게 웃어 보였다. 엄마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바다와 더 깊은 사랑에 빠졌다.
아들의 첫 바다 관찰일지
아들의 손을 계속 잡아주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준비된 구명환은 아들의 몫이었다. 구명환을 붙잡고 있는 것에 익숙해지니 더 자유롭게 바다를 즐기게 됐다. 나도 자유를 얻어 주변을 편하게 오가며 스노클링을 즐겼다. 가이드가 빵을 여러 개 챙겨 왔다. 물고기 밥으로 주려는 것이다. 빵을 뜯어 바다에 뿌리는 것은 아들의 몫이었다. 물고기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아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들은 처음 보는 다양한 물고기의 색깔과 무늬를 계속 엄마에게 설명해 댔다. 역시 처음 보는 여러 산호의 모양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려는 듯 말로 옮겼다. 약 한 시간의 스노클링 동안 아들은 한 번도 무섭다거나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약간 긴장됐지만, 진짜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기 전, 아들이 엄마에게 했다는 말이다.
다음에 더 맑고 시야가 좋은 바다에서 또 스노클링 하기로 약속했다. 아들은 이미 지도를 보며 전 세계 여러 바다에 뛰어들어 여행 중이다. 그동안 책에서 봤던 여러 해양생물을 직접 만나겠다며 난리다. 어디서 무엇을 만날 수 있냐며, 언제 같이 갈 거냐며 독촉하기까지 했다.
사실 사누르 바다는 시야가 흐린 편이고 깨끗하지 않았다. 각종 쓰레기가 곳곳에 떠다녔다. 아들도 나쁜 사람들이 바다에 쓰레기를 버렸다며 슬퍼했다. 날더러 아빠는 바다에 자주 가니 모든 쓰레기를 주워 오라고 했다. 바다를 깨끗하게 해서 바다생물들을 지키라는 것이다.
스노클링이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은 듯하다. 바다를 사랑하는 법을 넘어, 바다를 지켜야 할 이유까지 배웠나 보다. 작은 손에 쥐여준 자가 세상의 길이를 재듯, 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금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