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 22, 251006
덴파사르를 떠나 우붓으로 가는 날이었다. 대형 슈트케이스 3개, 기내용 2개. 이제 짐도 프로처럼 쌌다. 가이드의 차 트렁크에 모든 것을 실었다. 우리는 해안과 시내를 등지고 발리 우붓의 정글숲으로 향했다.
우붓에서도 처음 계획은 '여행'보다는 '살기'였다. 아들이 다닐 어린이집까지 미리 알아봤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남은 기간은 관광객으로 지내기로. 대신 매일 바쁘게 돌아다니지는 않기로 했다. 현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발리의 생활을 체험하되 여유 있게. 우붓에서는 닷새를 머물 예정이다. 첫날은 이 도시의 분위기를 익히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첫 장소인 상에 몽키 포레스트에 도착했다. 원숭이가 사는 숲 안에 숨겨진 사원이 있는 곳이다. 원래 개발 제한 구역이었는데 약 20년전 자연공원으로 개방됐다고 한다. 입구부터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플러스 숲이 우리를 압도했다.
6살 아들은 원숭이를 가까이서 만난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며칠 전부터 주의사항을 함께 숙지했다. 위협하지 말 것, 눈을 마주치지 말 것, 소지품을 조심할 것. 입장료를 내자 공원측에서 원숭이 먹이를 줬다. 아들이 직접 먹이 가방을 챙겼다. 자기가 원숭이에게 나눠주겠다며.
사원을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원숭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관광객들 사이를 오가며 먹이 먹기에만 바빴다. 서로 털을 골라주는 한가로운 모습도 보였다. 호기롭던 아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나는 먹이를 손에 쥐고 무섭지 않다며 시범을 보였다.
뒤에서 '홱'하는 소리가 났다. 원숭이가 아들의 먹이 가방을 통째로 채간 것이다. 6살 아이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안아도 달래도 소용없었다. 공원 직원이 가방을 찾아줬지만 이미 늦었다. 아들에게 원숭이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 되어버렸다.
이 후 내 팔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손으로 눈을 계속 가렸다. 주의사항대로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며 아예 원숭이를 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원 직원들이 여러 번 원숭이를 쫓아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몽키 포레스트를 일찍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유명한 띠르따 엠플 사원 대신 조금 덜 붐비는 사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힌두교 전통 방식의 정화 의식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신과 교감하고, 사원의 흐르는 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그저 하나의 체험이라 생각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사제가 알려주는 순서대로 의식에 참여했다. 먼저 짜낭사리와 그 속의 꽃으로 기도를 올렸다. 색깔마다 의미가 있는 꽃들. 귀에 꽂기도 하고, 머리에 얹기도 했다. 그다음 정화소로 들어갔다. 세수를 세 번. 앞으로 해서 몸 전체 한 번. 뒤로 해서 다시 한 번.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다.
손을 모으고 물소리에 집중했다. 순간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시에 편안해졌다. 물이 나오는 석상은 열 개. 열 번 같은 의식을 반복했다. 횟수를 더할수록 여러 단상이 떠올랐다. 발리에서 있었던 일들, 가족과의 관계, 일과 직업에 대한 생각, 주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까지. 물을 맞고 기도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짧은 의식이었지만 무언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준 힌두의 신들에게 감사했다. 한 달 살기가 잘 마무리되게 해 달라며 끝인사를 올렸다.
우붓은 정글이었다. 해변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곳곳에 큰 나무와 숲이 있었다. 오래된 집과 사원들이 많아 옛 도시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우붓은 발리의 예전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지역이다.
깊은 숲 속에서 아름다운 폭포도 만났다. 숲으로 들어가자 아들의 모험심이 깨어났다. 산책로를 넘어 폭포 가까이 가겠다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몽키 포레스트의 공포를 이미 잊은 듯이. 굵은 나무뿌리를 조심히 건너 물가에 닿았다. 물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폭포를 바라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들의 흐뭇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표정으로 하루의 만족을 얻기에 충분했다.
저녁 식사 시간쯤 우붓 왕궁 근처의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바로 식사를 했다. 이 날은 추석이었다. 보름달이 떠 있었다. 한국에서 5천 킬로미터 떨어진 정글 도시의 밤하늘에서 그 달을 봤다. 달은 어디서나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때마다 다르다. 이 밤 내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동시에 온전히 여기 있었다. 두 곳을 오가는 마음으로 보름달을 마주했다. 달빛에 몸과 마음을 씻으니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