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깊은 맛이 궁금해진 시간

[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 24, 251008

by 이음바다

가뿐한 마음으로 쿠킹클래스


걱정으로 눈을 떴다. 다행히 아내의 몸놀림이 가벼웠다. 발밸리가 지나간 것이다. 속이 편하다며 웃는 얼굴이 반가웠다. 아들의 얼굴도 폈다. 엄마와 장난을 치며 쿠킹클래스 픽업차로 향했다. 나도 가뿐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시장에서 식탁까지

쿠킹클래스는 시장에서 시작됐다. 야채 가게와 식료품 가게를 돌았다. 가이드가 발리 요리에 쓰이는 식재료를 소개했다. 그동안 매일 먹어왔던 이곳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직접 맡아본 재료의 향이 먹었던 음식의 맛을 깨웠다. 만져보고 씹어본 식감이 입 안의 감각을 살려냈다. 그냥 먹어왔던 음식이 달라 보였다. 이제 직접 만들어볼 시간이다. 시장을 떠나 한 가정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붓 한 시골의 시장 풍경

손과 시간의 요리법


요리에 기계가 쓰이지 않았다. 발리 전통 방식으로 요리했다. 재료 손질부터 굽고 삶고 익히는 것까지 모두 옛날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스 불을 쓰는 것만 제외하고. 써보지 못했던 도구들을 만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절구와 맷돌은 모습이 비슷했지만 손맛은 달랐다. 선생님은 슥슥하면 갈리고 부서지는데, 나는 잘 안 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능숙한 아내는 역시 나보다 진도가 빨랐다.


아들의 손길이 예쁘다


시장에서 지루해하던 아들이 바빠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칼질을 제외한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손질된 재료를 섞고 찧고 나눴다. 어린이집 요리 교실에서 배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꾸만 자기 결과물과 아빠 것을 비교하며 웃었다. 선생님의 칭찬이 그의 요리부심을 부추겼다. 요리를 마치고 열한 시쯤에야 첫 끼가 시작됐다. 허기졌을 텐데, 아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손으로 만드는 그 과정 자체에서 이미 배를 채웠나 보다.

이 날의 최연소 요리사

한 끼의 문화사


식사는 닭고기와 토마토가 들어간 스프로 시작했다. 바나나잎에 싸 익힌 참치와 직접 만든 소스를 얹은 닭고기구이. 야채볶음과 콩으로 만든 템페. 후식으로 나온 팬케이크까지. 발리에서 먹었던 어떤 식사보다 맛있었다. 직접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입 한입이 발리의 문화를 전했다. 손 끝으로 음식을 경험한 아들도 이곳의 음식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맛이란 결국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들도 최고의 발리 음식으로 인정

케짝 케짝 케짝의 중독


저녁에는 케짝댄스를 관람했다. 도심에 자리 잡은 달렘 타만 카자 사원을 찾았다. 시작 30분 전부터 어둑어둑한 불빛 주변으로 관람객이 가득했다. 케짝댄스는 유희의 춤이 아니다. 악귀를 쫓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성한 춤이라고 한다. 발리 힌두교의 라마야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다. 라마 왕자가 납치된 아내를 구하는 이야기. 원숭이왕 하누만과 황금사슴 같은 신비로운 등장인물들도 나온다. 공연을 보기 전 스토리를 미리 찾아보고 아들에게 얘기해 줬다. 하누만 등장 장면을 가장 기대했다.


몸과 리듬의 언어


윗옷을 벗은 50여 명의 남자들이 들어오며 공연이 시작됐다. 선창과 함께 "케짝. 케짝. 케짝. 케짝을 반복하는 강렬한 노래가 이어졌다. 손과 몸이 리듬에 맞춰 절도 있게 움직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 같은 소리와 동작을 낼 때 나오는 힘과 무게가 느껴졌다. 케짝 케짝하는 소리에 중독되는 기분이었다. 무희들의 춤사위보다는 거친 음악이 나에게 더 흥미로웠다. 그 음악이 하는 말을 몸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대미는 파이어댄스가 장식했다. 사자상을 든 남자가 불타는 코코넛 더미 앞에 나타났다. 시뻘건 불길을 발로 차고 밟고 다녔다. 어둠 속에서 나뒹굴던 코코넛 불더미와 날리는 붉은 재가 극적 효과를 더했다. 불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차고 밟기를 반복했다. 어둠과 함께 공연이 끝났다.

중독되는 리듬 케짝 케짝 케짝
불을 찰 때마다 아들이 놀랐다

뒤늦게 발리를 탐독하다


춤과 음악, 각 동작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 의미들을 만들어낸 배경이 알고 싶어졌다. 호텔로 돌아와 잠들기 전 발리와 우붓의 역사를 검색해 보이는 대로 읽었다. 한 달 살기가 끝나가는데 말이다. 발리에 오기 전부터 조금만 더 살펴봤다면 한 달 살기의 깊이가 달랐을 텐데. 아쉬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직 남은 날들이 있다. 마지막까지 더 깊이 보면 된다. 발리는 나에게 계속 가르쳐 줄 것이다. 이 날 내 코와 입, 눈과 귀에 준 강한 자극처럼.


하누만의 춤
당겨 찍다보니 화질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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