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을 걸던 아침, 눈이 대답하던 밤

[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 25, 251009

by 이음바다

요가의 성지에서


우붓의 매일 아침은 특별했다. 요가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요가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붓에 와서는 왠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요가의 성지에서 몸을 한 번쯤 뒤틀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쿠킹클래스만큼 기대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들이 요가하는 모습도 궁금했다.

릴리, 랄라, 룰루의 정원


우붓의 유명한 요가원들을 앞에 두고 나는 그냥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을 택했다. 매일 아침 7시 반, 소수로 운영되는 작은 클래스였다. 6살 아이를 데려갈 생각이니 아무래도 이곳이 나았다.


첫 수업에는 세 가족이 모두 참여했다. 그런데 아들은 요가보다 정원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릴리, 랄라, 룰루 세 마리의 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고 했지만 거부했다. "너 이 동작할 수 있어?" 하며 승부욕을 불러일으켜봤지만 소용없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들은 단 한순간도 자신의 매트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오리 세 마리가 주인인 요가원

처음 배워본 몸의 언어


다음부터는 요가원에 나 혼자 갔다. 아내가 발리밸리로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며칠의 요가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선생님은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느껴본 적 없는 내 몸 구석구석의 신호가 포착됐다.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고요 속의 소리를 찾게 됐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귀가 아닌 몸으로 듣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몸은 나의 것만이 아니었다. 몸 자체가 감각의 언어가 되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 1 대 1의 기적


마지막 수업의 수강생은 나 혼자였다. 운 좋게 1 대 1 요가를 하게 됐다. 첫날 안 되던 동작들이 되기 시작했다. 뻗지 못하던 곳에 손이 닿았다. 굽히지 못하던 곳이 굽어졌다. 단 며칠 만에 내 몸이 달라지니 신기했다. 선생님도 신이 났다. 안 하던 동작을 자꾸 시켰다. 마지막 날, 나는 내 몸과 처음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1시간이 하루를 다르게 만들었다. 요가를 누구보다 하고 싶어 하던 아내 앞에서는 요가 얘기를 참았다. 아들에게는 내 요가 모습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하지만 아빠에겐 관심이 없었다. 릴리, 랄라, 룰루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발리의 요가는 결국 오리들로 기억될 것 같았다.


요가 선생님이 찍어준 칭찬의 사진

뜨갈랑랑에서 만난 생존의 초록 계단


우붓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 약 20분 거리의 뜨갈랑랑 논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논길을 걷는 트레킹은 하지 않기로 했다. 계단식 논이 잘 보이는 카페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글과 논이 어우러진 초록을 바라보며 수영까지 할 수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벼가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저 작은 틈의 수확량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처럼 그저 논을 바라보려 찾는 관광객을 위해 계단식 논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우붓 사람들은 척박한 정글숲을 사람이 사는 땅으로 바꿔놓았다. 가파른 경사에 굳이 평지를 만들었다. 저 작은 틈도 식량을 만드는 공간으로 써야 했을 것이다. 절박한 생존의 몸부림이 저 초록이었다. 우붓 뿐 아니라 베트남 사파에서도, 경남 남해에서도 사람은 산을 깎고 곡식을 심었다. 논은 관광객의 배경이 되기 전에 생존의 언어였다.


아들은 여기서도 칼싸움을 했다

우붓 왕궁에서 본 눈동자


우붓에서의 마지막 저녁도 공연 관람이었다. 이번에는 왕궁에서 펼쳐진 레공댄스였다. 피로가 쌓인 아내와 아들은 가지 않고 나 혼자 다녀왔다. 사람이 거닐던 왕궁이 공연장으로 변해 있었다. 케짝댄스와 달리 무대가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음악은 전통악기의 연주로 채워졌다. 유려한 몸짓과 빠른 발놀림, 손가락의 흔들림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를 더 매혹시킨 것은 큰 동작들이 아니었다. 진짜는 작은 것에 있었다. 무희의 눈동자 움직임과 표정이었다. 발리 댄스는 눈동자의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눈을 오랫동안 감고 있기도 하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뜨고 있기도 했다. 눈동자 움직임을 더 부각하려는 듯 눈 화장이 짙었다. 표정과 함께 원하는 감정과 이야기를 모두 전달하고 있었다. 눈동자라는 작은 부분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집중시켰다.


가장 화려했던 무희
칼군무는 아니지만

끝이 보이는 날 앞에서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엄마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진짜 끝이 보이는구나.”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내와 아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조용한 방에서 싱잉볼의 고요한 진동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감각의 경험을 떠올렸다. 호흡과 함께 하나의 지도로 엮어본다. 발리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깊은 숨이 되어주고 있었다.


우붓 왕궁이 화려한 공연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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