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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배 Oct 30. 2022

패잔병

회사가 전쟁터면 PTSD는 어쩌죠? 9화

정오가 되기 전, 회사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마음이 가벼웠다. 뚜렷한 계획은 없었지만 ‘탈출’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었다. 휴가기간은 1달이었다. 딱 1달만 쉬고 다시 달려야지 생각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은 PTSD를 겪는다는 걸. 회사가 전쟁터라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시작은 잠이었다. 스스로 부여한 1달의 휴가기간 동안 절실히 원하는 행위였다. 회사생활 동안은 잠이 부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어나기가 힘겨웠다. 매일 피곤에 시달렸다. 1달 동안은 누가 나를 깨우랴. 열심히 잤다. 그냥 자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잤다. 휴대폰 알람은 맞춰놓지도 않았다. 잠이 오면 자고, 눈 떠질 때도 자다가, 도저히 못 자겠으면 일어났다.


잠이 줄어들지 않았다. 자도 자도 잠이 왔다. 정확히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포근한 이불로 몸을 감싸고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었다. 분명 피로는 풀린 것 같은데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순식간에 낮과 밤이 바뀌었다. 오후 6시에 일어나서 아침 8시에 잤다. 당시에는 누나와 함께 살았는데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다. 누나가 퇴근했을 때는 방에 있고, 자거나 출근했을 때만 방에서 나왔다. 편의점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오곤 했다.


한동안은 전화가 걸려 왔다. 회사 사람들, 함께 일했던 파견 직원 분들부터 거래처 사람들까지. 소식을 들은 동기들이나 고향 친구들도 연락을 했다. 1통도 받지 않았다. 단 1통도. 전화벨만 울려도 움찔움찔 놀랐다. 누구와 대화한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같이 사는 누나와도 얘기하기가 부담스러워 피했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나. 덕분에 첫 6개월 동안은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휴대폰만 만졌다. 유일하게 움직일 때는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갈 때였다. 배달음식을 받으러 현관에 나갈 때였다. 체중이 불어났다. 본래 65~70kg 정도였던 체중은 1년 만에 90kg까지 늘었다. 1달만 쉬자고 했었는데, 1달이 1년이 되었다. 방구석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TV에서 보던 히키코모리가 바로 나였다.


모아놓은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방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내야 할 돈이 많았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부터 휴대폰 사용요금과 자동차보험까지. 식비도 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아꼈던 건 옷값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았으므로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결국 통장은 0원이 됐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침대에 딱지처럼 붙어버렸다. 히키코모리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친구는 말없이 돈을 빌려 주었다. 다음에는 누나에게 빌렸다. 한 소리를 들었지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빌린 돈을 전혀 갚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 돈도 동이 날 즈음이었다.


엄마. 엄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른이 넘은 아들이 1년째 놀고 있는데도 그 흔한 잔소리 한 번하지 않았다. 엄마는 사과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아들이 퇴사하자 엄마는 일을 나갔다.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 사과 공장은 박봉이었다. 일은 힘들지만 보상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일했다. 월급을 받으면 10만 원씩 적금을 넣고, 30만 원을 나에게 부쳤다.


“응, 엄마.”

“아들, 무슨 일이야? 돈 부쳐줄까?”

“어, 생활비가 다 떨어졌네.”

“응, 알았어. 30만 원이면 돼? 더 부쳐줄까?”

“아니야. 그거면 충분해. 어디 나가는 곳도 없는 걸.”

“아들, 엄마는 아들 믿어. 다시 일어나서 훨훨 날 거라고. 그때까지는 엄마한테 의지해. 엄마가 열심히 벌어서 생활비 보태줄게.”

“미안해 엄마. 내가 생활비를 줘도 모자랄 텐데.”

“아니야. 아들이 힘들 때 엄마는 몰랐어. 엄마가 알았다면 아들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가 너무 미안해.”


천하의 대역죄인이었다. 환갑이 넘은 엄마에게 생활비를 받으면서 놀고먹는 인간. 서른이 넘었는데 부모님께 용돈도 못 주는 무능력한 아들. 나는 생각했다. 내가 1년 동안 방구석에 박혀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당장 살 만했기 때문이다.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었다면, 당장에 먹고사는 게 급했다면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엄마는 사과 공장에, 아빠는 일용직 현장에 내몰아 놓고 나 혼자 누워서 살이나 찌우고 있었다.


누나는 엄마가 매일 새벽 4시에 새벽기도를 간다고 했다. 기도 내용은 ‘아들이 제발 저 방에서만 나올 수 있게 해 주세요’였다. 엄마의 소망은 소박했다. 다시 대기업에 들어가라는 것도, 돈을 많이 벌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이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기를, 오직 그것만을 바랐다. 변해야 했다. 기대에 보답해야 했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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