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부터 할 수 있을까? 몸을 조금 움직여 보기로 했다. 1년간 써보지 않은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기로 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오래 달리기나 팔 굽혀 펴기를 하면 진 적이 없었다. 세상에 나가려면 그때 느꼈던 자신감이 다시 한번 필요했다.
하루에 딱 2가지만 했다. 맨손 스쿼트와 팔 굽혀 펴기였다. 기초 운동이라서도, 가장 효과가 좋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외의 운동은 할 수가 없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퇴사하고 히키코모리로 지내는 동안 체력은 저질이 되었다. 팔 굽혀 펴기 10개 3세트, 맨손 스쿼트 20개 3세트가 힘에 부쳤다. 한번 하고 나면 팔이 떨리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하루에 30분씩 운동을 했다. 미약하지만 조금씩 움직였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니 무력감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밤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12시 이전에 잠이 들었다. 퇴사하고 나서 꼬박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휴대폰 알람을 8시로 맞췄다. 누나가 출근할 때 배웅을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다.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가서 걸었다. 목적은 햇빛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염은 깎지도 않은 채 벤치에 앉아 햇빛을 받았다. 학생들이 등교하기도 하고, 어른들이 조깅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2주가 흐르고, 조깅을 시작했다. 500m를 뛰고 500m를 걸었다. 공원은 뛰기가 좋았다. 1바퀴가 정확히 1km였다. 아마 그렇게 만들어 놓았겠지. 점점 뛰는 거리를 늘렸다. 1주일 후에는 600m를 뛰고 400m를 걸었고, 1달 후에는 800m를 뛰고 200m를 걸었다. 바퀴 수도 늘려갔다. 처음에는 1바퀴, 다음에는 2바퀴, 3바퀴까지.
헬스까지 병행하니 체력이 금세 좋아졌다. 왜인지 자신감도 생겼다. 그즈음 엄마에게 받은 30만 원이 동이 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단기 아르바이트를 검색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2가지였다. 일당을 지급하고, 말할 필요 없는 곳.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물류센터가 있었다. 온갖 대기업의 물류가 모이는 곳이었다. 한 업체의 냉동창고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시간은 3시~10시. 페이는 9만 원. 동상에 걸리지 않게 얇은 옷을 많이 껴입고 오라고 했다. 일이 많으면 추가 페이도 챙겨준다는 소리에 나는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30분 뒤 답장이 왔다. 오늘부터 출근하라고.
기능성 내복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급한 대로 체육복을 여러 개 겹쳐 있었다. 양말도 두 개를 신었다. 외투를 입고 목 토시를 한 다음 모자를 썼다. 열이 빠져나갈 곳을 최대한 막은 뒤에 지하철을 타고 물류 센터로 향했다. 도착하니 나 같은 사람들 여러 명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날씨가 추웠다. 모두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박스에 담긴 제품이 정상적으로 담겼는지 체크하는 일이었다. 힘을 많이 쓰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량이 많았다. 제시간에 끝내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모자 안쪽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일이 끝난 시간은 11시. 추가 페이가 들어갈 터였다. 페이는 기뻤으나 지하철이 끊겼다. 택시를 탈까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택시를 타면 추가 페이가 고스란히 날아간다. 팔짱을 낀 채 몸을 움츠렸다.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걸었다. 한정거장이 그렇게 먼 줄 몰랐다. 걸어서 1시간이 걸렸다. 도착하니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다며 내 등을 두드려줬다. 다음날 9만 9천 원이 들어왔다. 기능성 내복을 하나 샀다. 누나에게 기프티콘을 보냈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3주 정도를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매일 출근하니 돈이 꽤 모였다. 센터 담당자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고생했다며, 언제든지 일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했다. 아예 정식으로 일하고 싶으면 자리도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인터넷을 뒤지며 영업 경력과 물류센터 경험을 활용할 일자리를 찾았다.
“어? 뭐야, 이런 게 있었네?”
문득, 공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명한 의류 브랜드의 매장 스태프 채용 공고였다. 취업준비생일 때 지원했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에는 서류에서 불합격해 면접은 보지도 못했다. 영업과 물류센터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취업을 준비했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인은 취업준비 당시, 매장 관리직으로 합격했고 현재까지 일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네. 저는 뭐 그럭저럭.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다른 건 아니고, 뭐 하나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지인은 매장 스태프에 대해 설명해 줬다. 처음에는 계약직이고 박봉이다. 하지만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어 관리직까지 가는 사례가 많다. 자신의 상사도 계약직에서 올라온 케이스이다. 꽤 큰 회사인데도 특이할 정도로 나이나 학력, 스펙을 보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공채보다 스태프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자기는 만족한다. 입사하겠다면 추천한다.
“고마워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얼른 지원해 봐야겠네. 합격하면 맥주 한잔 해요.”
“그래요, 합격하면 제가 쏠게요.”
지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오랜만에 쓰는 자기소개서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1주일이 지나자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지원한 매장의 점장이라고 했다. 이력서가 마음에 든다며 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다. 경력을 보니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면접 날, 지원자는 4명이었다. 일반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자기소개를 하고, 경력에 대해 묻고 답했다. 점장은 나에게 2가지 개인 질문을 했다.
“퇴사 후에 1년 동안 공백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이었나요?”
“잠깐 우울증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방전되어 있었나 봐요. 퇴사를 하니까 뒤늦게 밀어닥친 거죠. 그 때문에 1년 간은 방에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히키코모리처럼 살았어요.”
점장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그럴 만도 했다. 대기업 경력에 물류센터 경험도 있어서 면접에 불렀는데 우울증이 있었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다니.
“그렇군요. 지금은 어때요? 극복하셨나요?”
“그럼요. 오히려 회사를 다니기 전보다 낫습니다. 저는 휴식의 중요성을 간과했어요. 휴대폰으로 치면 배터리가 10%, 5% 남았는데도 그대로 사용한 거죠. 배터리가 없으면 고성능 애플리케이션은 작동 안 하는 거 아시죠? 그런 상태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배터리는 무한하지 않다는 걸요. 지금은 다릅니다. 제때 충전해주고 있어요. 일할 때는 바짝 집중하고 쉴 때는 최선을 다해 쉽니다. 아, 경험해보니 배터리 용량 자체를 늘리는 방법도 있더라고요. 매일 조깅을 하고 운동을 합니다. 그러면 더 오래 일해도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더라고요.”
점장은 그제야 미소 지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점장은 체격이 좋았다. 키는 180이 훌쩍 넘고 체중도 100kg가 더 나갈 듯했다. 하지만 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탄탄한 럭비선수 같은 몸이었다. 미소를 지은 건 본인도 운동을 하고 그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오케이, 알겠습니다. 면접 보느라 수고하셨어요. 혹시 더 하실 말씀 있나요?”
나는 슬쩍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해주세요.”
“사실 준비한 건 아닌데요. 오늘 면접을 보러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노점상 분을 만났습니다. 끼고 있어도 휴대폰 터치가 되는 장갑 아시죠? 그걸 팔고 계시더라고요.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분도 이 근처에 사실 텐데,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저분을 무대에 올린 원동력은 뭘까?’ 하고요.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했어요. 아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 책임감이 모든 걸 이겨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동안 저밖에 몰랐어요. 회사를 다닐 때도 가족이나 친구들,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냥 제 살길 찾느라 바빴죠. 제 숨통이 트이면 그때 주변을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선배가, 퇴사 후 방구석에 박혀 있을 때는 가족과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한가해서가 아니었어요. 여유 있어서도 아니고요. 모두가 바쁘고 살기가 빠듯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도와준 거죠.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제가 보답할 차례예요. 저도 지하철 노점상 아저씨 같은 책임감을 갖고 일하려고 합니다. 힘들고, 창피해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떠맡겼던 짐을 같이 나누어 가고 싶습니다."
이틀 후 면접을 봤고 토요일에 합격 연락이 왔다. 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화를 했고, 누나에게도 이를 알렸다. 돈을 빌렸던 친구에게도 얼마씩 갚겠다고 말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덧니 선배 생각이 났다. 전화기를 열어 검색을 했다. 프로필 사진은 변함이 없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신호음이 갔다. 1분이 지나자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이 됐다.
‘내 전화를 받기 싫은가? 하긴, 1년 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전화를 놓고 생각에 잠겼을 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덧니 선배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나는 얼른 통화 버튼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덧니 선배.”
“야 축구 한판 뛰고 와서 샤워하느라 전화 못 받았다. 너는 전화를 1번만 하냐? 이 새끼, 1년 만에 연락하는 거 치고 성의가 없네.”
“뭐래요. 오랜만인데 말투 여전하네요.”
“삼십몇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쉽게 변하겠냐? 그건 그렇고 잘 살고 있냐?”
“요번에 면접 본 곳 합격했어요. 다음 주부터 출근할 것 같아요. 출근 전에 기도받고 술도 한잔 얻어먹으려고요.”
“이거 완전 도둑놈이네. 잠수 타다가 1년 만에 연락해서는 다짜고짜 술 사라니.”
“그래서, 안 사줄 거예요?”
“6시까지 신촌으로 와. 새로 찾은 곱창 맛집 데려가 줄게.”
“네 거기서 봐요. 근데 이제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회사 선배도 아닌데.”
“웃기는 놈이네. 너 하고 싶은 데로 해. 끊는다. 약속시간 늦지 마라.”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니 두렵기도 했다. 또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준비도 했다. 마음은 물론 체력까지도. 다시 전쟁터로 간다. 회사로 간다. 다시 다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맞설 수 있다. 경험이 있고, 체력도 있기에.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나를 지탱해줄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