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by 새벽

예전의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하지 못했다.


아픈 것도 아닌 것 같고, 멀쩡하지도 않은 것 같고,
그저 “좀 이상한 하루”들이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늘 같은 말로 대답했다.
“그냥 좀 피곤해.” “요즘 컨디션이 별로야.” “원래 내가 좀 그래.” 그 말들은 편했지만, 정확하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은 말은 결국 나를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오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설명이 없던 시절의 나는 모든 결과를 인성으로 돌렸다.
미루면 게으른 거고, 예민하면 성격이 나쁜 거고, 말이 많아지면 철이 없는 거고, 갑자기 가라앉으면 의지가 없는 거였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판결을 내렸다. “오늘도 실패.” “역시 나는 안 돼.” “이래서 내가 문제야.”
설명 없는 상태에서 자책은 가장 쉬운 결론이었다.


정신과에 다니면서 조금씩 새로운 단어들을 배웠다.
집중의 문제, 실행의 문제, 기분의 속도, 조절의 어려움,
과부하,회복 시간. 그 단어들은 내 삶을 갑자기 낫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내가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아무것도 못 했고, 사소한 일에 예민했고, 결국 약속도 취소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하루 종일 나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렇게 말해보았다. “오늘은 실행 에너지가 낮은 날이구나.” “지금은 회복이 먼저 필요한 상태구나.”
그 말은 나를 면죄해주지는 않았지만, 나를 찢지 않았다.


그 차이는 분명했다. 설명할 수 있게 되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못 한 일 앞에서 “왜 이걸 못 했지?” 대신
“어디서 막혔지?”를 묻게 됐다.


무너진 날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 약하지?” 대신 “지금 내 상태는 어디쯤이지?”를 묻게 됐다. 질문이 바뀌면
결론도 바뀐다.


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만큼만.


“오늘은 컨디션이 좀 떨어져서 그래.”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이야.” “지금은 과부하가 온 상태야.” 그 말들은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었고, 핑계가 아니라 공유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속이지 않게 됐다.


설명이 생기면 관계도 조금 달라진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덜 불안해진다.


예전에는 오해받을까 봐 무서웠다면, 지금은 오해받아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건 꽤 큰 변화였다. 나는 아직도 내 상태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루의 기분은 여전히 복잡하고,
말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날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설명은 모든 걸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를 덜 미워하기 위해 필요한 거라는 걸.


예전의 나는 아픈 날에도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야.” “그리고 그건 괜찮아.”그 말을
나에게 먼저 해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회복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벌주는 언어 대신 나를 살리는 언어를 고르려고 한다.


그 선택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한다. 그리고 그걸로
지금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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