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괜찮아 보이는 사람”으로 살았다.
사람들이 보기엔 잘 웃고, 잘 대답하고, 해야 할 말은 적당히 하고, 힘들어 보여도 금방 회복하는 사람.
그게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괜찮아 보이면
질문을 덜 받는다. 설명을 덜 해도 된다.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괜찮다는 걸 증명하는 데 하루의 에너지를 썼다. 아파도 티 내지 않고, 지쳐도 약속을 지키고, 무너져도 다음 날 아무 일 없던 얼굴로 나갔다.
그 얼굴이 내가 세상에 내놓은 방패였다. 문제는
그 방패를 벗을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나를 쉬게 두지 못했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돼.” “다들 이만큼은 견뎌.”
“너만 유난 떠는 거야.” 그 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했다.
그래서 나는 아픔을 숨기는 데 점점 능숙해졌다.
멀쩡한 척은 생각보다 많은 걸 요구한다. 표정 관리,
말의 온도 조절, 감정의 삭제, 기분의 은폐.
나는 늘 내가 어떤 상태인지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먼저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이런 날이 있었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주저앉는 날.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아니고,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날.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하루 종일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괜찮은 사람 역할, 버티는 사람 역할, 아무 문제 없는 사람 역할.
연기는 끝나면 바로 피로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는 멀쩡해 보여서 괜찮을 줄 알았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너는 원래 강한 사람 아니야?” 그 말들이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너무 오래 그 말을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해 보이기 위해 약해질 시간을 포기했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정신과에서 나는 처음으로 “괜찮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나를 더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쉬게 했다. 괜찮지 않은 날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회복이었다.
이제 나는 조금씩 연기를 줄인다. 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지금은 힘들다고 말하고, 버거운 날에는 쉬겠다고 말한다.
물론 아직도 어렵다.
여전히 눈치를 보고, 여전히 망설인다. 하지만 예전처럼
모든 걸 숨기지는 않는다.
괜찮아 보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다.
아픈 날이 있다고 해서 내가 부족해지는 건 아니고,
쉬는 날이 있다고 해서 내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걸 배우는 데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더 이상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솔직한 상태의 나’를 지키려고 한다. 그게 나를 덜 아프게 하고, 조금 더 오래 살게 한다.
오늘은 그 연기를 하나 내려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