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우는 중

by 새벽

나는 오래도록 혼자 버티는 사람이었다. 힘들다는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고, 무너지기 전에 숨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시간을 끌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순간 내가 작아질 것 같았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어딘가 부족하다는 증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려 했다. 집중이 안 되면 더 오래 앉아 있었고, 기분이 흔들리면 더 조용해졌고,
무너질 것 같으면 연락을 끊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대신 관계를 줄였다. 그게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버틸수록 더 자주 무너졌다.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선택은 강해지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고립되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나는 도움을 거절하면서
스스로를 더 좁은 공간에 가두고 있었다.


정신과에서 들은 말 중 가장 낯설었던 말이 하나 있다.
“도움받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 말은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능력은 스스로 해내는 것 아닌가? 의지는 혼자 버티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많은 도움 위에서 살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고, 병원에 가고,
누군가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하루를 산다. 그런데 왜
마음에 관한 도움만은 특별히 부끄러워해야 할까.


도움을 요청하는 건 항복이 아니라 조정에 가깝다.
지금 내 상태가 혼자 해결하기엔 벅차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 인정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 지금 힘들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원래 완벽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 목소리는 작았다.
“지금 좀 과부하가 와서 그래.” “오늘은 약속을 줄이고 싶어.” “지금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그 말들은 누군가를 붙잡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이었다. 놀랍게도 세상은 내가 생각한 만큼 무너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이해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나는 더 이상
혼자서 모든 걸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못 하는 날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은 쉬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약이 필요하면 약을 먹고, 진료가 필요하면 진료를 받는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관리다. 여전히 나는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한 번 더 망설인다. 혹시 부담이 되지 않을까, 혹시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또 설명해야 하나. 그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도움은 기대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결은 사람을 조금 더 오래 살게 한다.


나는 혼자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배운 새로운 생존 방식이다.


오늘 나는 조금 덜 혼자이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나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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