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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Aug 28. 2024

EP.1 떠돌이 프리랜서

자발적 재택근무의 시작


나는 프리랜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리(free)한 워커(worker)다.

프리랜서라는 말이 언제부터

주변에 자주 드나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디지털 노마드, N잡러, 1인 사업가 등

많은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 와중에

덩달아 의미도 난해해졌다.


과거에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이 난처한 적은 없었다.


16살의 나이에 내게 큰 위로이자 롤모델이 되어 준

호스피스 병동의 수간호사 선생님 덕에

간호사라는 멋진 직업을 꿈꿀 수 있었고,

8년이란 시간 동안 열심히 나의 청춘을 바쳐 일했다.


여전히 환자를 대하고

아픈이의 입이자 귀가 되는 일은 멋진 일이라 생각하지만

조금 더 멋진 일을 발견하고서 병원을 나왔다.


고질적인 병원 시스템에 대해 불만도 있었으나

내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 다.


사실, 당시의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그다지 유행민감한 편도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을 따라 나도 그저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했던 말이

백번이고 맞았다.




의료취약지역의 보건진료소 소장이 되고 싶었던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공무원이란 직업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적어도 다섯 가지는 해야 한다고 했다.

8급 보건진료직 공무원이 되려면

정말 딱 다섯 과목의 시험을 봐야 했다.


급히 준비한 시험은 보기 좋게 낙방했으나

진정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 까닭은

아마 시험 후에 느꼈던 '후련함'이었으리라.

그 흔한 시원섭섭함이나 아쉬움 따위 전혀 없었다.

이 시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후련했고 뿌듯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해.

그런데 공무원이 되고 싶은 건 아냐."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도

후련함 중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약 4개월의 짧은 수험기간을 마치고

(벼락치기 하느라) 고생한 나에게 쉬는 시간을 부여했다.

수험 생활을 하며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어 '어문, 어법'을 공부하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더 섬세하게 신경 써서 보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내 생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한국사 공부를 하며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는 부끄러움과

똑똑한 사람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유배 보내놓으면

좋은 책을 '너무' 많이 써서 후손들이

시험 준비 할 때 조금 힘들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산 정약용을 유배 보낸 이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꽤나 좋은 것들을 얻었다.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었던 곳은 워낙 시골이었던지라

일하기마땅한 곳이 없어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원래도 책을 쓰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마케팅 회사의 바이럴 원고 작가로 일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흔한 지도 첨부조차 할 줄 몰랐던 나는

어느새 마케팅 회사에 의뢰한 사장님들의

훈훈한 피드백을 듣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누군가는 전자책 몇 권을 사서 불나게 공부했을 것이나

나는 운 좋게 돈을 벌면서

로직이니 상위노출이니 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시험을 치르고 2주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급한 성질머리는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2할 정도는 나 자신을 괴롭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깨작깨작 글만 쓰고 있는 사람'이란 낙인을

나 자신에게 찍고 며칠을 머리 싸매며 고민했다.


인생의 큰 변곡점 중 하나였기에 꽤 아팠고 꽤 많이 울었다.

그러다 '지금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당장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싶은 감정이 들었을 무렵이었다.


1인분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이

잠식해 버린 나는,

21호 쿠션을 쓰고 있어도 낯빛이 어두웠다.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것은

7,80대의 나를 상상하며 유언장을 적어봤다는 것.

그리고 정확히 2주 후에 내 메모장에 적힌

나의 첫 유언장을 읽어보았다.

덤덤하게 작성했을 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다.


나는 사라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포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는 것.


그저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잘 되길 바라는 1호 팬이었을 뿐이다.


잘 살아내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다 이룰 수야 있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이겠는가?


허나 내가 아는 세상은 '노력'을 우선으로 삼지만, 노력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는 이상한 구조였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동기부여 강연 영상을 보며 꾸준함, 노력 따위의 이야기를 들으면

잠시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내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 후로 자기 계발서나 동기부여 영상을 볼 때마다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나의 감정들을 토해내기 위해 매일 유언장을 썼다.

그렇게 매일의 유언이 모여

나의 첫 독립출판 서적 [유언일기]를 썼고,

아주 당연한 수순처럼 지인 버프 몇 권을 제외하고선

내가 내 책의 최다 구매자가 되었다.


인생의 버킷리스트라고 생각했던 [책 출판하기]가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쉬운 일도 아니었다.


책을 낸 이후로 글이 더 좋아졌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자면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졌다.


유명 작가들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다는

일명 '첫 작품 불태우고 싶어 증후군'을 느낄 새도 없이

글과 관련된 일들을 찾기 시작했고,

개인 블로그도 시작했다.


그러다 사정상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을 무렵,

만만치 않은 경기도 물가와 고정소비와 생활비와 비해 모자란 수입이 점차 부담스러워졌다.

글을 계속 써도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리며 병원을 찾아보다가

새로운 일을 찾아보고, 면접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 X 됐다.'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일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8년의 전문직 경력을 알아주고 쓸모 있는 곳 보다,

언제든 병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의심받기 일쑤였고

심지어 '더 좋은 조건의 회사도 들어갈 수 있지 않아요?

여기 왜 지원하셨어요?'라는 질문까지 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자기소개서 첨삭 일을 시작하며

수입이 늘었고 개인 블로그도 성장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경기도 삶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던 어느 날,

운전 중 문득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액셀을 밟고 싶어.

앞에 차든 벽이든 세게 밟고 사라지고 싶어'


순식간에 든 생각에 소름 끼쳤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차를 도로가로 세웠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고

두려움과 불안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서 당시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었고 그의 처방은 "내가 뭐 잘 못해준 것 있니?"였다.

순식간에 나는 나의 연인을

여자친구도 잘 못 챙기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고

유언일기가 정말 나의 마지막 유언이 될 뻔했다.


그래서 (자발적)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다.

내 선택이 회피든 도망이든

그저 일하기 싫다는 핑계든 간에...


나는 그저 지내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고,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 심리상담치료를 받았고

내겐 답답하고 벅찼던 도시 생활을 마무리하고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조용한 동네로 이사 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다.


자연스레 영글어가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있건만

글솜씨는 어째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 마신 뒤

쉽게 찌그러지는 깡통 같을까?


그래도 이곳에 썼던 첫 번째 발행글을 다시 읽어보니

새삼스럽지만 조금 괜찮아진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이 여전히 난처할 때도 있다.

그 시작은 이렇게 미약하지만

지금은 나 조금 살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떠돌이 프리랜서의 시작.

(아직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여전히 떠돌이라고 적어두겠다)


전업 8개월 차 프리랜서 작가의 이야기.

어쩌면 그냥 인간, 사람 또는 사회적 동물의 이야기.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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