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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Sep 18. 2024

EP5. 전문직이라는 울타리

자발적 재택근무의 시작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81 병동 임 00 간호사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전화멘트.


대학시절을 포함 '간호사'란 직업은 합이 12년,

33년 인생에서 오랜 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프로필을 작성하는 어디에서나

시작점이자 가장 오랜 경력이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현재는 퇴사했지만

나는 여전히 면허가 있으니까.


아마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도

나만의 직업관은 가지고도 남았을 성격이지만,

유독 '나이팅게일 선서'에서 의미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려 노력해 왔다.


아직까지 그 마음은 여전하다.




나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며 마주했던

많은 동료와 환자, 보호자들과의

울고 웃었던 이야기가 끝없이 소중하다.


3교대 6년, 외래 경력 2년,

그 와중에 외래에서는 책임간호사로 일했다.

(여기서 책임간호사란 책임만 더 주어지는 간호사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힘들지 않은 직업이 무엇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직은 또 어디 있겠는가.

일하는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현재의 나도

업무적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이다.


아무리 혼자 자기 일만 하면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 어느 영역에서는

분명 타인과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설명하며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말로 이끌어야 했던 역할실히 해왔기에

일반적인 회사의 직장인과 견주었을 때

내 경력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 8년 차라 여겼다.

물론 숫자로만 본다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거기다 전문직이자 서비스직으로서

인간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니,

다른 어떤 직업보다 아주 뛰어나진 않아도

부족한 스탯을 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험에 따라서는 자신이 봤던

간호사의 모습이 마뜩않아

내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한 인간으로서는 부끄럼 투성이 일진 몰라도

간호사로서는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은 없다.




일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 경력이 내 약점이 되거나

얕잡아볼 수 있는 이유는 아니라고 여겼다.


8년 차 간호사 경력을

1번으로 적었던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가진 건 쥐뿔도 없다면서

웬 경력 자랑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서론이 길었던 건

그만큼 내가 취업시장에서 자신감이 넘쳤기에

그 좌절도 컸다는 이야기의 복선이다.


이렇게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면

복선이란 의미가 여전한진 모르겠지만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서른 살의 여름, 나는 휴식을 선언했고

3달만 쉬어야지 마음먹었던 것이

점차 장기적인 프로젝트처럼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너무 수월한 나머지 그저 좋은 일이라 여길 뻔했다)


사실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과

같은 제목의 오래전 에서처럼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웠고

다시 병원에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도전을 시작하는 척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라고

주변에 구구절절 설명하며

정신없이 다녔던 기억만 빼곡하다.




경험을 쌓는다는 것,

세상의 다양한 일에 도전한다는 것.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해있기도 잠시,

내 마음은 매우 조급해졌고 생각만치

시간과 조건을 충족하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집 주변에 건설 현장이 있었고

우선 발로 뛰면서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했다.


몇 달간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했기에

여러 구인 구직 사이트를 검색해서 지원했고,

안전교육이수를 받아 화재감시자로 지원했다.


이틀 뒤, 보기 좋게 낙방했다.


당시 내 몸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나

수면과 마음의 문제로 먹고 있던 약에 발목 잡혀

결국 면접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덕분에 상당기간 동안 무기력해져있어야 했다.


이 후로 배달어플 고객센터 상담사, 학습지 선생님,

공부방 보조교사, 건설회사 사무직, 부동산 사무보조,

탕후루 가게 알바, 아동복 매장 관리 등

도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추운 겨울 중학교 교문 앞에서

학원 노트를 나눠주는 단기아르바이트도 하며

대학시절 프랜차이즈 피자집 아르바이트 경력

3년 6개월의 바이브를 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거한 몇 가지 일 중 절반도 되지 않았고,

개중에는 막상 시작하려니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난처한 표정을 하곤

실수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 달 이상 다니질 못했고,

단순 내 변덕이라기 보단

업무강도에 비해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 적다고 느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집에서 노느니 그렇게라도 버는 것이 맞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그 보상이 내 가치를 평가하는

숫자처럼 느껴졌다.


시급 0000원 정도의 능력과 가치를 가진 사람.


때로는 근로계약서 없이 일해야 한다는

업체를 보며 의아했고,


때로는 다시 간호사 할 것 아니냐며

퇴사를 걱정하는 눈초리에 아니라고 설득해야 했고,


때로는 면접 첫 질문이

결혼이나 임신 계획에 관한 질문이란 것이 점점 지쳐만 갔다.




과거에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중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그래도 너는 취업이 쉽잖아"라는 말에

차마 그만큼 퇴사율도 많다는 말로

쏘아붙이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퇴사를 생각하기도 전에

회사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 되니

과거에서 친구가 느꼈던 무기력함과 답답함을

여실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간호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업무 능력이 빛나서라기 보다

문직이라는 큰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그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먹이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야생의 처절함 속에 던져지니 알게 된 것이다.


의도는 아니었으나

나의 볼멘소리를

어쩌면 부러워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전한다.


지금의 나는 '프리랜서'이기에

큰 틀에서 보자면 울타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창작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논하려면

너무나 많은 입맛이 존재하기에

그저 나의 결과 맞는 곳에서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더 많은 영역을 공부하려 애쓰기도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좋은 시도가 될 수도 있으나,

이 와중에 '도전 중독'에 빠져서

정작 꾸준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같은 곳만 계속해서 뱅뱅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미래의 불안과 현실에 안주하는 나를

어찌하면 좋을지 가끔 생각해 보았다.


서로 극단적인 끝자락에 서있을 뿐

중간이란 밸런스는 없이

스위치처럼 불안과 매너리즘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생각한다고 해서

딱히 마땅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울타리 밖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다가

누군가의 표적이 되거나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생각'만' 한다면 생각에서 그치겠지만

생각을 하루에 하나씩만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어느새 나라는 망아지 한 마리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외양간 하나쯤은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결국 재료만 모으다가

다시 내 발로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고 소문났기에

강을 건너기 전에 지레 겁먹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 여기며

단정 지어선 안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이 지론도 너무 단정지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돌다리도 너무 두드리면 무너진다.


그러니 무너지기 전에 건너야 하고

다리의 견고함을 확인하는 방법은

연습 삼아 다른 다리들을

건너보지 않으면 없다.


나는 지금 다양한 길을 걷고

다리를 건너며

조심스레 바닥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대차게 지나가 보기도 하는 과정에 서있다.


시간이 지나 결국 되돌아오더라도,

직접 겪으며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가 있으니

돌아가는 길을 더 잘 찾아갈 수 있으리라.


큰 울타리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멈춰있지는 않겠다.


잠시 그늘이 되어줄 외양간 하나 두어

또 다른 누군가 울타리를 나와 방황하고 있다면

언제든 편히 마음 뉘어도 좋다고

팻말 하나 걸어두고 마실 다녀오도록 하겠다.




다음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EP1. 널린 게 글감입니다



*P.S. 현재도 환자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의료계 종사자분들께,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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