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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02. 2024

EP2. 그래서 직업이 뭐라고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서 퇴사한 내게

차츰 묻는 공통 질문 중 하나였다.


으레, 내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배려의 의미로 말을 아끼기도 했지만

어떻게 지내냐는 말로 물음을 대신하기도 했다.


'간호사' 단 세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되자

듣는 사람의 피로도를 고려해서

'프리랜서'라 말하기로 했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면 어떤 글을 쓰는지,

어디서 글을 쓰는지,

책을 내면 돈이 되는지부터 시작해서

블로그와 바이럴 원고 등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에 눈을 반짝거리며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콜럼버스의 용기를 뽐내 것 같았겠지만

결국 수십 번을 반복했던 이야기다.


생각해 보니

듣는 사람의 피로도를 고려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이렇다 할 취미 없었던 이유는

'잘하고 싶어서'였다.


뜨개질, 컬러링 북, 글쓰기, 그림 그리기,

퍼즐, 미니어처 하우스 만들기 등


좋아하기 시작하면 무언가 완벽하게 끝날 때까지

다 이뤄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오히려 스트레스받기 일쑤였다.


원래 취미생활이라는 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시도를 통해

얼마나 많이 스트레스받으며

나를 소비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내 성격 탓이라 생각하기엔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저 잘 해내고 싶을 뿐인데.'


고개를 숙여서 해야 하는 작업은

보통 1주일 동안 하루 2시간씩 공들여 진행해야 했으나

2~3일 만에 뚝딱 만들어내기 일쑤였고

보람차다는 마음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대신 목덜미의 뻐근함만이

1주일 동안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경추 통증을 얻고자 시도한 것들은 아니었을 텐데,

무언가에 집중할 때 상념에 빠지지 않고


그저 이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완성된 무언가를 만들어 있다는 매력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좋았다.


혹은 나를 시샘하는 누군가가

내게 마법이라도 걸어서

'3일 안에 미니어처 하우스 완성하기'

프로세스를 심어놓은 것 같았다.


집중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이제, 성과를 곁들인...)




내게 '잘한다'의 의미는


빠른 시간 내에,

완성도 높게,

효율적으로,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바로 위의 문장을 보기만 해도

숨이 차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몇 년씩이나,

혹은 지난 세월을 숨차게 뛰어왔던 것일까.


취미와 능력을 동일 선상에 두고 있었다는 것도

기가 차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수도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참 멋지게 보였을 거란 생각에

뻐근한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하다 멈칫하며

태연하게 여유로운 척해왔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듣기도 했었고

또 가끔은 인정해 주는 말을 듣기 위해

조금 더 빠르게 뛰면서

겉으로는 '별것 아니라는 듯' 행동하느라 부단히 애써왔다.


그렇다고 마냥 안쓰러워할 것도 아니다 싶은 것이

목표한 것을 완수하고 나면

만들어낸 소품이든 능력이든 자격증이든

내게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저 소비해 버린 것만은 아닌 것 같기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한없이 주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는 마음속에서 간질간질 무언가가 피어난다.


설령 상대방에게 다시 돌려받지 못했어도

항상 내게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취미 역시 그랬다.


계속해서 나를 소비하면서도 분명 내게 남은 것들이 있었고

눈에 보이는 형체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마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완성', '목표', '성취'를 향해 달렸다.


전속력으로 달린 것도 아니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기분을 만끽하느라

내게 남은 것들을 볼 여력이 없었다.


(이건 여담이지만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지만

달리기는 못 한다.)




엉겁결에 시기가 맞아떨어져 프리랜서가 되었고,

'무슨무슨 타이틀'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겼다.


바이럴 원고를 작성하며

배웠던 지식이 아까워서 블로그를 꾸몄고

오랜 시간 블로그 타이틀을 고민하다가 완성했다.


'간호사 제제의 취미는 성과 내기,

특기는 취미 늘리기'


취미 부자로서,

취미를 홀라당 날리기보단

성과를 남겨야만 직성이 풀렸기에

빛깔이 곱디고운 개살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덕에 '종합 프리랜서'라는

거창한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으나


이 글의 첫 질문처럼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


물어보면 여전히 구구절절할 수밖에.


선물 포장에도 한동안 심취했었던 나는

그런 나조차 포장하기를 좋아했고,

어쩌면 주책맞게도

스스로를 팔방미인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벌여놓은 일과 하고 싶은 것은 많아

이것저것 한 발짝,

아니 한 발가락씩만 걸쳐놓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일해야 한다는데

욕심을 부린 탓에 짧은 시간 내에

10가지 직업의 전문가가 되려고 했다.


그 순간에도 마음속 깊이 지내고 있던

나의 '내면아이'는

아주 얕은 나의 지식이 들키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행여 내가 나를 상처 주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포장된 나를 보여주려 했었나 보다.


선물을 고르고,

선물이란 기분을 내기 위한 포장지는

물건을 곱게 감싸고 리본으로

마무리까지 지으면 그럴싸하게 보인다.


기대와 함께 리본을 풀어

포장을 뜯고 나면

내용물이 마음에 드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포장지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가끔

예쁜 포장지나 의미 있는 선물을 받았을

포장지까지 함께 보관해 두곤 했으나

그 역시도 책상 서랍 어느 구석에 박혀있기에

역할을 다한건 매 한 가지다.


언제부턴가 그런 내가 답답해졌고

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무언가 도전할 때마다

실패가 익숙해지기도 했다.

참 슬픈 일이다.




그러다 지난겨울.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던 시절.


문득 눈 쌓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12월 1일도 아닌 적당히 어중간한 16일에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꺼내놓았다.




수 없는 추락을 반복하며 내게 남은 것이 있을까? 사실 가까운 지인 누구 조차 '추락'과 나를 연결하지 않을 것이다. 늘 실패와 좌절이라는 불안감을 견디기 위해 어떤 분야든 새로운 동아줄을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뒷 목이 뻐근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일들을 붙잡았고, 그 끝은 '재수 없는 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쨌거나 경험이 되어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성질이 변한 일을 분류하기 위해 서랍장을 정리하다 보니 눈에 띈 것이 있다.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것' 목차에 들어가 있고, 어느 한 장 다른 곳으로 섞이지 않았던 것. 마치 짝사랑과도 같은 '글'이야말로 단 한 번도 놓은 적 없이 어느 형태로든 러브레터를 보냈었다.


블로그, 공모전, 출판, 작사, 마케팅, 첨삭 등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용할 때도 어떤 불편함 없이 즐겁게 임했다. 종이를 넘길 때의 소리, 내지의 질감, 중고 책방의 냄새 등 감성이 고픈 것이 아니라 글이 고팠다. 글을 읽으면 항상 충분히 소화하고서 늘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똥을 싼 건 아니지만, 모든 글이 똥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

.

<생략>

.

.

내가 그동안 사랑했던 것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변하거나, 길게 지속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은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샀던 다이어리를 시작으로 여전히, 아니 더 열렬히 사랑하는 중이다.


어려움과 힘듦이 지속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만큼은 떠날 수 없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2023년 12월 16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없는 건' 中



이 글을 쓰고, 이듬해 1월 1일에 들어서야

꽤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글을 읽고 쓰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다음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EP3. 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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