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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Sep 25. 2024

EP1. 널린 게 글감입니다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전문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결코 프리하지만은 않은

프리랜서로 지내기를 자처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며 썩 그럴듯한 어른이 된 것인지

기억이 미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이기에

어느 한 톨의 순간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떠올리면 아직 아물지 않은 구석도 있으나

이 정도의 구석이라면

작가로 살아내기에는 적당한 습도인 것 같다.


이제는 명랑소녀의 프리랜서 도전기가 아닌

'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새로운 시도들은

모두 글과 관련한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나를 종합 프리랜서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본업이란 제일 시간을 많이 들이는 수고와 함께

경제적, 정신적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라 여긴다. 


시작도 그러했듯이

현재 가장 큰 수입원은 '글쓰기'다.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녹음하고,

사진을 찍으며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만

본업에 잠시 지쳤을 때

나를 환기시키기 위한 일 중 하나일 뿐

매일같이 돌아와 하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환기시키는 일을 정말 '업무'로

실천 중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다양한 곳에서 쌓인 자극들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간혹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내 본업으로 돌아와

글을 통해 감정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쉬이 여긴다

생각하는 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이런 나를 보며 간혹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 중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우가 더러 있다.


"그럼 제제님은 어디서 에너지를 얻으세요?"


한 동안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며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도

관심 기울이던 시기에 들었던 질문이다.


"제제님은 바다 같아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찾아가도 다 받아주고 품어주는...

근데 그 바다는 어디서 위로를 받죠? 지치지 않으세요?"


하마터면 '지칩니다'라고 말할 뻔했으나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내 모습을 바다라고 여겨주는 사람에게

마냥 솔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렇게 말하며

걱정스레 묻는 모습이 어쩐지 내게 위로가 되었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정말 내가 바다 같은 사람인지의 여부를 떠나

어디로받으며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것인지..


비틀거렸던 시기를 갚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해도 꽤 지치지 않고

열심히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피로감을 느끼는 것과

지치는 것은 다르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조용히 운을 띄웠다.


"바닷속 깊은 곳에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는지 수는 없지만,

그저 그것들을 품어 왔다는 것과

찾아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위로 아닐까요?"


그녀가 국어 선생님이었더라도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려 했겠지만

과학 선생님에겐 더더욱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바다에게 힘든 일이 아니고,

가끔 잠잠할 때 심심한 일이 아니듯이.


그저 그렇게 있어왔던 것이고

나를 보며 기뻐하거나 위로받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받지 않나 싶어서요.


에너지는 그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나오고요."


전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다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말했던 답변에서

되려 내가 의미를 찾게 된 것 같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안부를 물을 수 없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의 제 글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 글감은 언제나 무궁무진했다.


세상이 쉽게 변하고

빠르게 변할수록,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임을 알게 될수록,

슬픔과 좌절을 겪어 나갈수록,

그리고 그 과정을 벗어나 다시 떠오를수록

그 모든 순간과 감정이 글감이 되었다.


그때마다 흘러가는 생각을 놓치진 않을까

바삐 메모장에 옮겨 적곤 했다.


가끔 다시 메모장을 열어보면

이게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고

한 공간에서 떠올렸던

생각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으나

당시를 떠올리며 차근차근 그때의 나로 돌아가본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26번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태풍이 오기 전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고

길가의 커다란 가로수가 휘청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시끌벅적한 버스 안에서,

바깥 날씨를 바라보며

휘청이는 나무가 어쩐지 묘하게 낯선 기분.


어쩌면 정작 흔들리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 와르르 쏟아져

집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에 급히 내려야만 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무는 흔들리고 있었다.

또 여전히 일렁이는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던 나.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구석에 던지다시피 놓고

일기장을 꺼내 글을 휘갈겼다.


매년 한 권씩,

그렇게 총 6권을 적어나갔기에

떠들어보면 그날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지은 날이 아니고서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일기를 써왔다.

매일, 꾸준히 적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쏟을 곳이 필요한 날에

짜증 나는 감정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고

기쁜 감정을 날씨에 투영해서 적어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 일기장조차

누군가 보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나만의 암호로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안한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 시절부터 시를 적고 있었던 것 같다.


운율과 시적 표현을 들먹이며

각도기로 재보겠다 말한다면

조금 화가 날 정도로 꽤 진지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마음을 쏟고 싶어'가 훨씬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그렇게 한 없이 요동치는 사춘기 감정은

무궁무진한 글감이었고,

감정을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에 가까운 표현을 쓰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단어를 수집했다.


한동안은 단어 수집에 심취해서

설명해 주어야 아는 단어를 써야지만

잘 쓴 글인 줄 알았다.


한때 '아련하다'라는 단어가 꽤 신선하고

세련된 표현이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쓰는 글마다 '아련'이라는

어간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꾸역꾸역 넣곤 했다.


대학 입학한 후, 상황은 바뀌었다.


단어 수집 탐험기는 멈추기로 하고

과제였던 리포트를 써 내려가기 바빴다.


한동안은 감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으나

당장 주어진 본분을 착실히 수행하려면

열심히 과제에 집중해야 했고,


무심하게도 리포트 과제에선

문학적 글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4년간은

주어진 글감에 맞게 적어 제출하는 학점의 노예로 지냈다.


졸업 당시에는 문학적 감성이

다 사라진 것만 같아 허무하기도 했으나


지금 와서

감정을 표현하기 위

공감하기 쉬운 글펼쳐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온몸으로 느낀다.


가끔은 '아, 그 단어 뭐였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한다.


분명 이 자리에 딱 맞는 단어가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그렇게 전하려 했던 의미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여정은

마치 예능프로에서 스피드 퀴즈 게임을 하듯

막판 버저비터로 크게 외치는

단어 하나가 되어 짜릿함을 선사한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는 듯한 기분이랄까.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최근에는 글쓰기를 취미이자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며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

심심치 않게 마주다.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필력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써보세요'라는 말도 무책임한 것 같아 조심스럽다.


하지만 시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모든 예술과 창작 활동을 즐기는 나로서

추천해 줄 만한 방법은 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책, 음악, 그림, 사진

명언, 날씨, 운동 그 외의 다수.

단 한 가지라도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어려운 당신,

무엇을 글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신에게

감히 글쓰기 방법을 제안하려 한다.


혹시 '네가 감히?'라는 마음이라면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겠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다면 2초 정도

스크롤을 내리고 읽길 바란다.


(시-작!)


그저 지금 떠오르는 단어 하나를 적고

그 단어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3~4가지 정도 적어보자.


학창 시절 암기과목을 위한 '마인드맵'을 그리듯

머릿속이든 핸드폰이든 공책이든 어디든 적어보자.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그 단어들의

후속 단어를 적어보자.


제일 먼저 떠올렸던 주제 단어와

후속단어의 연관성은 아무래도 괜찮다.


그리고 각 단어들의 의미나 정의를 찾아보고 적어보자.

그 과정 중 무언가 내 마음에 끌리는 단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단어 하나를 사용해도 좋고

모두를 사용해도 좋다.


한 문장이어도 좋고

호흡이 아주 긴 글이어도 좋다.


긴 글을 적는 것이 어렵다면

한 줄씩 완성해 보고

문장의 중심 단어를 떠올리며 엮어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3~4 문장의 단문이 완성되면

점차 글 쓰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되고

굳이 마인드맵을 그릴 필요도 없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에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거나

마무리하는 문장을 적는 것이다.


(끝!)


첫 술에 배부르면 감사할 일이고

아니라고 한들 책임질 수 있는 것 아니

아무것도 쓰지 않고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려나 싶다.


그렇게 점차 에는

나만의 단어와 감정들이 가득 차서

미숙하더라도 어쩐지 조금은 근사한 글이 된다.




종종 좋아하는 노래나 시를 떠올리며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런 구절을 적었을까?' 생각한다.


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에

결국 내가 편한 대로 상상하고 재단해버리고야 만다.

그러나 이 또한 내 글감이 되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이 된다.


자, 감히 한 가지 숙제를 내어본다.


오늘 새 국면에 맞아 드는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의 두 번째 꼭짓점,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의 첫 에피소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를 찾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적어보자.


혹은 이 글에서 나온 어떤 단어든 활용해서 글을 써보고

비교해서 읽어보아도 좋다.


'내가 훨씬 잘 썼는데?' 싶다면

굳이 내게 전해주길 바란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줄 테니.


그렇게 나라는 바다는 더 많은 것들을 품고

쉼 없이 일렁이도록 하겠다.




다음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EP2. 그래서 직업이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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