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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09. 2024

EP3. 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지난 에피소드 끝에

나를 '글 쓰는 프리랜서 작가'라고 소개했다.


꽤 개운하게 끝맺었다고 생각했으나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건

결국 나 역시 질려하던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중 하나로

전락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은 아니었나,


혹은 역경을 뛰어넘고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성장스토리를

쓰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싶어서다.


미울 정도로 다행스럽게

가진 건 쥐뿔도 없는 나의 이야기는

성공이라 부르기 대단지만도 않기에,

이런 찜찜한 마음으로 연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방향 되짚어보기로 했던 시점이었다.


작성일(24.10.05)을 기준으로,

운전 중 자가 출판 도서 <유언일기> 승인 소식을 접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글을 쓰는 이유가 뭐예요?"


최근 자기소개서 첨삭과 면접 컨설팅까지 진행하며

나름 창의적이고 기민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나

정작 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니

자소서 첨삭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마음이 철렁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보단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 이유로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저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분명한 형체가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마치 산수유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하기엔 왠지 너무 식상할 것 같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해야

나의 창의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가볍게 던진 질문에도

제 발 저려서 머리가 복잡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절주절 몇 분간 떠들어 댔고,

결론은 '누군가에게 닿는 글이기를.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마무리되었다.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으나

그 역시 진심이기에

더 이상의 말은 아끼기로 했다.




내가 글을 업으로 삼는 것을 결심하

변한 가장 큰 부분은

'종이책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의 사그락 소리와

내지마다 다른 질감.

시간이 지난 오랜 책 냄새는

언제 보아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오랜 벗과 같다.


다독하는 습관은 좋은 것이라 여겼으나

일주일 동안 4권을 읽었단 사실을

마냥 자랑할 수 없었던 까닭은,


이 속도라면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기 전에

통장 잔고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장바구니에 쌓여갈수록

내용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고

또 그만큼 실망도 컸다.


고 책방에서 구하기란 한계가 있었고

매번 서점에 들러 찾아오는 것도 힘들었기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을 무기 삼아

 'e-book' 읽기를 결심했다.


고집하던 종이책을 포기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회원가입 후 구독하기를 마친 후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다름 아닌 이금희 아나운서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 다.


부제는

'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이금희의 말하기 수업'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자 한 것은 맞지만

글과 관련된 책을 읽기 위한 목적과는

다소 엇나가는 부분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말하기 수업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금희 아나운서의 특별한 팬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가진 특유의 말투와

방긋 웃는 미소는 누구나 부러워할 요소라는 점에서

한 줄기 변명이라도 던지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글쓰기를 위해서라는 변명 하에

다정한 제목과 그녀의 말투 이끌려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세요?'라는

질문을 왕왕 듣는다고 하셨다.

나 역시도 직접 뵈었다면 아마 그렇게 여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핵심이었고,

말을 잘 듣다 보니 말을 잘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책까지 집필하게 된 것이다.


내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그 깊이와는 반비례한 무게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모든 문장에서 상냥함 묻어 나왔고,

말로만 듣던 초등학생에게 읽게 두어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설명.


좋은 말하기의 시작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데서 출발한다.


결국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형광등 불빛 아래서

평소와 별다른 것 없는 책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 생각이 들고 나니,

과거에 내 글들이

읽는 이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상상해 보았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누군가에게 내 글이 읽히지 않는 이유는

메시지의 강력함이 부족하다는 탓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그래서 더더욱
나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마치 무대 위에서 혼자만 빛나고 싶은 배우처럼

독자라는 관객을 생각하지 않은 독백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대화는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이야기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글도 결국 대화여야 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고,

원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쓰기의 출발점이 아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글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독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깨달음은 방 안의 적막한 공기보다도

깊게 나를 파고들었다.




종종 대화 도중에 이야기가 길어져서

집중력을 잃고 다른 생각에 빠질 때면

자주 듣던 말이 떠올랐다.


"내 말 듣고 있어?"


나는 왜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였겠으나

그 누구, 내가 말로만 '응, 듣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걸 원하진 않았을 거다.


진심으로 내가 그 말을 듣고, 이해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랐다.


이 글 역시도

읽고 있는 어느 누군가와

대화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채워졌다


아마  이야기를 흘려듣는 게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고,

그 속에서 또다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며 발견하기를 원다.


그렇다면 그 주체인 나는 잘 듣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나의 독백만을 늘어놓고 있었던 걸까?




다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시점으 돌아가보자.


'개정판'이라는 허울은

나의 오타 하나에서 시작되었고,

글 전체를 다듬고 다시 표지 제작까지 진행했다.

글을 통해 무언가 성취했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감정이 번졌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에 닿을까?’

'누군가 내 책을 읽고 싶어 할까?'


사실,

글은 나에게 가장 쉬운 존재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널린 게 글감이라고 해놓고

이런 이야기한다니 우습기도 하지..)


간혹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문장들을

빠른 시간 동안 적어 내려가며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했다.


너무 쉬워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었을까? 


나 자신에게조차 묻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로 인한 결심은

어쩌면 나의 자만과 '헤어질 결심'이자

나와의 싸움 '재회할 결심'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쓰는 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빚어야 한다는 것.


글의 방향이자 결심이다.


꾸역꾸역 짜낸 대답 속에서 발견한

내 목소리를 증거로 거짓 고백을 하진 않겠다.


읽는 이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내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연습은 어쩌면

글을 쓰는 한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외로움과도 같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남았다.




그럼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니다.


"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


이 질문은 독백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정답도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떤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내 글을 읽고 당신이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그리고 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나요?"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저 듣고 싶습니다.


결국

글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니까요.


그러고 나서 떠올린 나의 작은 이야기가

당신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조심스레 띄운 이야기가 당신에게 닿아,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길 바랍니다.


그러니 나는 다시 묻습니다.


"당신, 내 말 듣고 있나요?"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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