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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16. 2024

EP4. 나는 악덕 업주입니다.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후, 하고 잠시 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최근 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주어진 '일'로써 글을 쓰는 것 외에

'글'로써 글을 쓰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주목받는 글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글은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고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화면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중이다)


아무 글도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소중한 이들에게 가끔 생일 축하 편지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이어오며

기업 분석과 업계 이슈들을 파악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한동안 느슨해졌던 운동에 집중하며

땀 흘리는 기쁨을 되찾기도 하고,

새로운 공부에 열 올리며

학창 시절에 이만큼 공부했더라면

아마 학교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파이프라인을 늘려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 쓰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나 우러러봐 주진 않더라도

꽤 멋지게 사는 어른이고 싶었다.


자리를 옮긴 책상 덕에

밖을 바라보며

어느새 10월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연초에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꽃들은 자라는 속도도 다르고

피어나는 계절도 다르다지만

언젠가 분명 피워진다는 약속이 있기에

참고 견디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여러 선택지를 마주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사소하고 일상적인 선택부터

진로 결정과 업무 등 참으로 다양한 선택지다.


특히 인간관계 속 선택은 너-무 어렵다.


그때마다 고민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그 증거로 삶이라는 곡선에 수없는 변곡점이 찍혔다.


과거에 학습된 선택은

더 이상 그만큼의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되었고,

들이는 감정과 눈물의 양 역시 줄어들었다.  


변곡점을 찍을 때마다

그 자리에 표지판을 세워

나름의 이유와 감정들을 정성스레 기록했다.


선택의 시간과 감정의 소모는 줄었어도

항상 같은 이름의 표지판은 아니었다.

아주 미세하게 다른 형태였기에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단순히 이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보상처럼 따라오는

뿌듯함이 클 거란 생각으로 버텼다.


사실, 그 시점에서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라고

청춘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한마디 외치고

계속해서 희망찬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싶어도

사실 인생이 그렇지 못할 때가 많지 않던가.




조촐한 단역조차 허락되지 않은

허황된 욕심 같은 시기.


허나, 누군가의 눈에 그저 단역에 불과한

'행인 17' 아무개 씨는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행인 17 옆에 작게 적힌 이름 세 글자가

무척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성공, 성취, 도전이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과 조건에 놓여있더라도

24시간 나를 돌봐주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고

행인 17 아무개 씨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작은 성취에 뿌듯했고

감격하며 가슴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부풀어 오른 마음은 그 크기만큼이나

헐떡이며 지쳐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정작 나를 24시간 돌봐주고 있는 나에게는

어떠한 포상도 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고용계약서는커녕 최저시급조차 주지 않으면서

무보수로 365일 그 몇 배의 날들을 내가 지키고 있었다.


특히 선택지 앞에 설때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눈치 보며 휘둘릴 때가 많았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도

상황이 변변치 않아 이리저리 휘청거리기 부지기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잘 쓰지도 않는 '롤모델'이란 단어까지 운운하며

그들의 빛나는 점만을 부럽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부유하고 여유 있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를 24시간 돌봐주고 있는

나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약자에게 보이는 태도가

그 사람의 진정한 인성을 보여준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열정 페이조차 주지 않는

악덕 업주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원인 모를 마음속 갈증이 생겨

답답한 밤을 보내는 것조차 질려하던 찰나.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서였다.


7년 전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모든 것들이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때쯤,

그때야 나에게 눈을 돌려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4시간 나를 돌보던 나에게 물었다.


'너는 뭘 하고 싶니?'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

서로 공감하고 위로의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울 것 같아.'


소통의 창구를 찾아 라디오 플랫폼에 뛰어들게 되었고

약 6년간 사람들과 소통을 나누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런 내 모습이

'행인 17' 아무개 씨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고,

어떻게 하면 누군가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엔딩 크레디트 속의 나는

빛나는 주인공은 아니었어도

소소하게 나만의 방송을 키워 나가며

소중한 인연들을 맺어 나가며 감격하곤 했다.


나에게 집중하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지 손가락을 허공에 휘젓다 보니

어느새 펜과 붓을 들어 선을 그으며 스케치하고 있었고,


방법을 모르고 주어진 펜을 사용하던 나는

엇나간 빗금이 간혹 신경 쓰이기도 했으나

다음 장을 고대하며 색을 칠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경제적 부흥과 명예로움보다는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도전해 왔다.


경제적 포상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내게 쥐뿔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도전을 위해

수십 번을 마음 뜯어가며 울었고

실패하고, 실망하며,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속해서 도전하고 발전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이유는

결국 나를 위한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무수한 도전과 선택들 속에서

실패의 경험도 있었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경험이었기에

또다시 나를 위로할 수 있었던것이다.


선택과 경험이라는 사이클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면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타인을 의식하고 눈치 보느라

선택과 도전을 망설이고 있다면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악덕 업주 마인드를 내려놓자.


'행인 17'로 살았던 하루 역시

나를 위한 밀도 높은 시간으로 채웠기에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전적 의미의 변곡점이란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을 뜻한다.


어떤 한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다른 곳으로 방향이 전환되는 시점을 뜻한다는 것이다.


수학 시간에 배웠던 용어를 다시 정의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수능이 한 달 남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수험생이 있다면 잠시 휴식하고 힘내기를..!)


삶을 살아가며 방향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변곡점'이라 부른다.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곡선을 그려낸다.


한 번도 틀어진 적 없는 수월한 선보단

조금 모난 구석이 있어도

괜찮다고 여겼던 순간에 땀 흘려 세웠던 표지판이

선택의 길목마다 세워져 있다.

 

나의 표지판들은 웃거나 울고 있다.

울고 있다고 해서 하향선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웃고 있다고 해서 상향선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머물며

내가 느낀 감정과 모습을 그려 넣었다.


당시에 주어진 상황과 선택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했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과 함께 말이다.


정형외과 간호사, 라디오 DJ,

그리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까지.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하고 도전해 왔던

과정들 속의 변곡점들은 무수히도 많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때마다 여전하게 표지판을 세웠다.


오늘 나의 변곡점,

그리고 표지판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


잠시 앉아서 쉴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활동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변곡점을 찍는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오늘 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자.


'악덕 업주라 미안하긴 한데, 내일은 뭐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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