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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23. 2024

EP5. 글 쓰려면 운동하세요

글 쓰는 게 가장 쉬웠어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서 적잖게 듣기도 했지만

정작 가까워지기 힘든 그 녀석의 이름은 '운동'.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란 말은 들어 보았어도

글이 엉덩이를 떼는 싸움일 줄은 몰랐다.


이곳에서 처음 시작한 글의 주제는 '걷기'였다.

당시에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바쁘고 고된 일상에서 지쳐가는 나를

건져내는 작업은 무슨!


고작 빌라 2층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숨차다는 것을 느끼고서야

이러다 병원에서 번 돈을

병원에 다 쓰게 생겼다는 머릿속 비상벨이 울리면서

당장 내일부터 걸어야겠다 마음먹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타고난 마른 체형이 아니었고

잦은 회식과 야식,

그리고 혼술로 인해 나날이 거대해지고 있던 찰나다.


그저 예뻐 보이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필요한 준비물과 비용,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에 가까운 헬스장부터 찾아가

1년 회원권을 끊었을 것이다.


그래도 '상체보다 하체가 튼튼해야지!'라고

자기 위안 삼으며 회피 기술을 사용하려 했으나

30대를 맞이하고 나니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운동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나의 첫 브런치북 '쉼을 위해 걷습니다'이다.


(결과적으로 '쉼'을 위한 걷기였지,

첫 발자국은 '생존'을 위함이었다고 인제야 고백한다)




중력이라는 기묘한 원리 덕에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거라지만

이에 따라서 불편한 점들도 여간 적지 않았다.


걷거나 뛸 때

나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운명에 놓인

발목과 무릎은 무슨 죄이며,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의 목과 허리는 또 무슨 죄인가.


전업 프리랜서 활동을 마음먹기 전에도

건강한 다이어트를 선언하면서

1년 동안 약 30kg을 감량했다.

(물론 다음 1년 동안 25kg이 다시 쪘다)


극단적으로 굶어서 뺀 것은 아니었기에

요요 역시 천천히 찾아온 것 같다.


이 또한 30대에 들어서니 굶어서 체중을 조절하기엔

더 이상 그 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필요치 않은 NPO(Nothing per oral)로 인해

오히려 '병원엔딩'을 맞이할 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더욱이 운동을 시작해야 했고

별다른 준비 없이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생존을 위해 걷기를 선택했던 날의 아침


운동을 위한 운동화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었고,

노란색 후드티와 신축성 좋은

골지 롱스커트를 입고 나갔다.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느낌과 함께

1시간쯤 지나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짧은 생각과 흐린 판단력의 대가로 발의 물집을 얻었다.


그렇게 하나씩 소위 '장비빨'을 세워가며

걷기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나는 필연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공무원 시험이라는 나의 적성과 맞지도 않는 길에

매달렸던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운동이랍시고

'걷기'를 일삼았던 집 앞 산책로를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는

주변을 둘러싼 강가 산책로가 있었고

특히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그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사실, 출근 시간을 생각하면 그것들을 즐기며

여유를 보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당시에도 아름답다고 여기며 찍었겠지만

운동 인증샷처럼 매일 남겼던 강가 풍경은

이제 보니 내가 도시를 떠나게 이유가 되었다고 해도

누구든 수긍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 같다.



결국 1년이란 시간 동안 매일 걸으며

땀 흘리고 애쓴 나에게 새로운 운동화를 선물하고,

계절이 바뀌어 필요한 운동복을 선물하며

나름의 체력을 쌓았다.


이 시기는 내 암흑기의 시작이었지만

지금에서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여기기로 했다.


마치 고등학교 수학의 첫 단원이었던

집합 수준의 체력만 쌓았다 하더라도

표지조차 열어보지 않은 문제집보다는

100배는 낫지 않은가 싶은 마음에서다.

(과하다면 50배 정도로 정정하겠다)


덕분에 1년 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우울함과 좌절감이 나를 덮쳐 집안에만 처박혀있을 때도

근근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결국, 가진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나서야.


몸과 마음에

정말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용돈벌이 정도로만 여기던 일을 늘리며

블로그를 시작하고,

내 감정을 토해내기 위해 자가 출판을 감행하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활동들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미 바닥난 체력으로는

평소 하던 일을 지속하기란 '역부족'이 제격이었다.


몸이 지쳐 글 쓰는 것도 지치기 시작했고

삶을 지탱하는 많은 것들에 쫓겨

또다시 운동을 미뤘고,

운동을 미룬 나는

체력이 떨어지며 허약해져서

당장 글을 쓰는 것보다

요양이 필요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즐겨하던 산책조차

발목 통증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했다.


이제는 '정말 헬스장을 다녀야지!' 하는 마음으로

발목 통증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정형외과 간호사로 마지막 경력의 2년을 채웠으니

양 발목 X-ray를 찍자는 말에 수긍하고

촬영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설명을 듣기도 전에 

벽에 보이는 화면 속 사진에서

발과 종아리를 이어주는 뼈의 간격(발목 관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과거에 수술 일정을 잡았던

환자들의 발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년 전 발목 골절 이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체중이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며

관절에 무리한 압박을 줬던 결과였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4, 50대 발목 관절염을 앓고 있는 여성의

발목 상태라는 말을 듣고

인공 관절 수술이라는 미래를 너무 쉽게 그릴 있었다.


운동을 하더라도 체중 부하 운동은 피해야 하며

이미 진행된 질환은 되돌릴 수 없었고,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무릎, 발목이 아파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통증이 호전되어 조금씩 운동하려고 하면

이미 고장 난 부위의 재발 위험이 크고,

그렇다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활동량이 점차 줄어들어

더 관리가 힘든 몸이 되는 악순환을 마주한다는 것을.


평소보다 활동량이 줄었기에

섭취량을 줄이는 것은 당연했으나

그 또한 한계가 있었기에

그제야 왜 수영장에 중년의 어머님들이

그렇게도 많이 다니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했다.

운동을 하려면 발목이 아프지 않아야 했고,

발목이 아프지 않으려면 체중을 감량해야 했다.


이제는 생존과 생계 모두 위협받는 상황,

마치 운동이라는 감옥 속에

내 발로 다시 들어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듯

수영장은 이미 대기 인원이 가득 차서

당장 등록하기 힘들었고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실내 자전거였다.


과거에도 실내 자전거를 구매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자리 차지하며

옷걸이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었기에 치워버렸었다.


그렇게 창조손해를 만들어가며

당근마켓에서 3만 원에 누군가의 옷걸이를 구매했다.

(2화에서도 언급했던 '애엄마'님께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한다)


가진 것이 쥐뿔도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정말 남아있는 것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깡'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과거에는 왜 옷걸이로 사용했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최대한 발목을 사용하지 않으려 연구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봐야 안다는 말이

이토록 마음에 와닿을 수가 있을까?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감행하던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떠올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보기 좋게

말 그대로 발목에 염증이 생기고 나니 알게 되었다.


지난 모든 게으름과 건강하지 못했던 습관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필연적이란 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정형외과 간호사였고,

발목 상태를 알고 난 뒤

집에서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유난히 습하고 더운 여름이었기에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그렇게 수십 번의 다이어트 시도 중

처음으로 근육량이 늘면서

체지방이 줄어드는 놀라운 숫자 카운트를 보았다.


조금 더 가뿐해진 몸으로 아침을 맞이했으며

운동을 끝내고 나면 개운하게 씻고 난 상태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나는 유산소라는 말만 해도

근육이 붙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빠르게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너무 곱게 자란 덕에

푸딩 같은 몸을 유지한 것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오래 앉아 있기 때문,

그저 체력을 관리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생계와 생존을 위해 운동하며 살고 있다.

이리도 필연적인 '글'을 쓰기 위해 틈틈이 시간 내어

뻐근한 어깨와 목, 허리를 풀어주며 나를 돌보고 있다.


8년째에 접어든 마음의 감기 역시 점점 나아지고 있다.


가끔, 이렇게 어렵게 쌓은 탑이

무너지진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쥐뿔도 가진 것이 없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알고 있다.


마음가짐,

아니 마음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면 된다.


왼손으로 펜을 잡고 가위질도 하기에

가끔 힘겨울 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

점차 더 쉽게 잘라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조금씩 나를 돌보기를 애쓰며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EP1. 이제 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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