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살았던 집은 조그만 초가집이었지만 가운데 있는 마루가 넓었다. 까맣고 넓은 조각으로 된 나무 마룻바닥은 시원했다. 마루에 누우면 나무의 찬 기운이 더위를 식혀줬다. 여름에 선풍기가 필요 없다. 더운 여름날에는 마루에서 자고 마루에서 밥을 먹고 마루에서 종일 지냈다. 마루 앞뒤로 큰 문이 나 있어서 양쪽 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이 잘 통했다. 뒤편에 큰 돌난간이 있었는데 난간에 앉아서 동생들과 조그맣고 동그란 자갈들을 모아서 공기놀이도 하고 돌난간 한쪽에서는 삶은 고사리를 널어서 말리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은 비 내리는 날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안개 자욱한 바깥 경치다. 처음에는 뿌연 안개가 생겼다가 조금 후 안개가 걷히면 빗물에 젖은 뒷문 밖 과수원 나무들이 또렷이 보이고 비 맞은 나뭇잎들은 생기가 넘친다. 장독에 고인 물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반짝 반짝이는 장독과 바닥에 큰 돌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나도 같이 빠져들 수 있는 초가집이 정말 좋았다.
커다란 물 항아리 하나와 까만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와 군불 때 곳이 있는 널찍한 부엌을 사투리로 정지라고 한다. 옛날에는 나무를 때서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었는데 불을 땔 때마다 매캐한 연기가 났지만 싫지 않았다. 밥을 다 지은 할머니는 솥뚜껑 위에 내려앉은 희끗희끗한 회색 재를 매번 행주로 닦았고 그러면 솥뚜껑이 까맣고 큰 바둑알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새마을 운동 - 뒤처진 농촌 환경을 바꿉시다.
어느 날 마루와 정지가 있는 초가집이 없어지고 대신에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의 네모난 주택으로 바뀌었다. 농촌을 현대화시키는 게 목표였던 새마을 운동이 있던 때다. 정부에서 나눠준 시멘트로 온 동네 초가집이 새로운 서양식 현대화 주택을 짓고 슬레이트 지붕을 올렸다. 집마다 놓여 있는 돌담도 안전하게 보수하고 전통적으로 없었던 대문도 만들었다. 농촌의 주변 생활환경 또한 깨끗하게 바꿔주었고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마을 회관을 짓고 그 옆에 마을 주민을 위한 공동수도가 생긴 것은 물론 집에도 수도가 생겨서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부엌에서는 집마다 석유풍로를 사용하고 산에서 마른 장작을 구해오는 대신에 연탄으로 난방했다. 뭐니 뭐니 해도 달걀처럼 동그란 전구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전구에 달린 스위치를 찰칵하고 한 번 돌리기만 하면 전깃불이 온 방을 환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신기했다. 단기간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낡은 생활 문화 대신 새로운 주거 문화에 적응하고 우리의 의식도 점점 편리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바뀌어 갔다.
하지만 시멘트 집에서는 초가집에서 느꼈던 정겨운 느낌이 없었다. 새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다시 초가집을 다시 돌려달라고 속으로 외쳤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초가집을 없애버린 어른들을 원망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사방이 탁 트여서 시원했던 초가집 마루와 오밀조밀한 조약돌 위에 놓여 있던 장독대와 물 항아리가 있던 정겨운 정지와 할머니의 오래된 옷궤와 투박한 뒤주까지도 너무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오랫동안 쓸쓸했다.
남편은 나중에 늙으면 시골 가서 집을 짓고 살자고 말할 때가 있다. 시골살이가 얼마나 불편한지 아느냐고 질색하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는 그립고 그리운 초가집이 떠오른다. 힘들 때 고향처럼 생각나는 집, 슬플 때 보고 싶은 엄마 같은 집, 마음속에 여전히 고소한 냄새 풍기며 살아있는 집, 남편의 말에 선뜻 그러마 하고 대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