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오줌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간밤에 또 실수를 하셨나 보다
엉덩이에 살짝 손을 대어보니
철렁거리는 기저귀의 무거움과 축축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실수하신 것을 인지하지 못한 지 오래다.
실수 안 했다고 고집부리는 장모를 이끌고 욕실로 데려간다.
올해로 86세..
약 25년 전
60세 되던 어느 해 장모는 치매 판정을 받는다.
목욕탕과 음식점을 운영하며
2명의 친자녀와 4명의 배다른 자녀를 억척스레 다 키워내 출가시키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기세를 자랑하던 여장군 장모에게
치매는 청천 벽락과도 같은 일이다.
내가 왜 치매냐며
말도 안 된다는 불호령 속에
가족들은 입 밖에도 치매 얘기를 꺼내지 못하였고
그렇게
치매는 묻혀 버린 채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장기 요양 2등급 판정이 난 중증 치매로 진행이 되었다.
때로는
누군가 자기 물건을 훔쳐 갔다는 강한 의심과
이해 안 되는 분노를 표출할 때도
우린 그저 성질이 대단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넘겼다.
몇 번은 의사를 만나보기를 권하기도 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기 일쑤
이제 자녀를 다 출가시키고
막내이자 외동딸과 함께 살기로 작정한 지 26년째
그 세월은 곧
장모의 치매 여정과도 동일한 세월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장모는 자랑스러운 부모이자 어머니였다.
그 공로의 일부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기에
장모님의 선택에 맡겼고
지금까지 함께 동거를 하고 있다.
사위가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혀도 부끄러워하지를 않으신다.
사위가 편한 것이 아니다.
이제 장모님에게
사위의 모습은 오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치매가 걸린 장모님은
약 40년 전의 과거가 현실이다.
그러니
사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빠는 식사하셨어요?
오빠 나 좀 집에 데려다줘요!
오빠는 어디서 잘 건데요?
이런 질문을 날마다 나에게 던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빠 흉내를 낸다.
자! 밥 먹자
화장실 갔다 와야지!
이제 자야 된다!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자리에 드는 장모님의 모습은
한 명의 착한 여동생 그 자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는 몹쓸 질병이라고 한다.
물론 가능만 하다면 걸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치매는 누구도 비켜갈 수 없기에
치매라는 존재는
질병이라기보다 그냥
노인성 질환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본인 자신에게는 추억이 현실로 바뀌니
어쩌면 축복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이해하고 함께 동거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보일까?
하루하루 행복한 과거에 묻혀 살다가
아름답게 이 세상을 마무리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으면 좋겠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눈을 감고
자녀들을 잘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모님의 모습을 보며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장모님에게는 이 땅이
아름다운 소풍이기를 바래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