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쓰는 장모의 치매일기
지난 주말 장례식에 다녀왔다.
여느 장례식장이 다 그러하겠지만
고인의 처절히 슬프고도 가슴이 아픈
못다 한 삶의 슬픈 여정..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아름다울 뻔했던 엄마와 아들의 얘기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65년간의 삶을 마무리하고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결국 태어난 그곳에 어제
한 줌의 재로 묻혔다.
나와의 관계는 처남
그러니까
형님 동생 사이로 맺어졌다.
유난히 여동생을 귀여워하고 아꼈던 탓에
매제인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었고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을라 치면
당신의 고민처럼
함께 생각하고 함께 나누었던
참으로 소중한 관계로 이어져 왔지만
그 삶의 연속은 어제로 마감이 되었다.
2박 3일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고인의 영정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못내 이루지 못한
그의 꿈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 한구석
사라지지 않는 허전함을
내리누를 길이 없다.
그의 꿈은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사는 것도 아니었고
자식들과 만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꽃 피는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어머니와 함께
한 백 년 사는 것이었다.
자식들이나 부인이나
시샘할 만도 한 그런 꿈
그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못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임종하며 호흡이 멈추고
눈이 감기는
그 마지막 순간에
양쪽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형님은
이 세상을 떠났다.
넉넉히 백 년을 꿈꾸고 계획해 왔던 그의 삶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온 머리의 통증은
악성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미처 치료할 틈도 가지지 못한 채
3개월이라는
짧은 시한부 판정을 채우고 떠났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도 미처 못하고
아니 잠깐만! 잠깐만!! 하고
말할 새도 주지 않았다.
세 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눈과 팔다리 소화기관 등
모든 기능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의사 표현도 눈을 껌뻑일 정도만 가능하였던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는
이미 악성 치매에 걸린 지 6년을 넘기고 있다.
자식을 거의 몰라보기가 대부분인 그녀가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모자는 상봉을 하였지만
"니가 왜 여기 있노?"
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던
어머니와 아들의 어색한 만남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식물인간인 말기 암 환자 아들과
2급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의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
삶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품고 있기에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는 추억과 회상이
가슴 아픈 기억만 가득하다면
과연 무거울까?
그리고
아직 피지도 못한 꿈으로 마감한 삶은
가볍다고 해야 할까?
태어난 지 한 살도 넘기기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한번 불러보지도 못하고
한번 안겨본 기억도 없는 아버지란 존재
진짜 존재는 하셨을까?
수도 없이 의문을 품어 보지만
불평할 새도 없이
남겨진 21살 엄마와 한 살 아들은
가혹한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다.
그리고
11살이 되던 해
새로이 맞이한 아버지라는 존재
하지만 이전 남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적 편입도 시키지 않는
서러움과 홀대를 묵묵히 감당하였지만
눈물로 얼룩진 모진 학대를 도저히 견디다 못해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우리 둘이 그냥 죽자!"
라고
하소연을 하는 아들을 보다 못해
어머니의 외가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삶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가슴에 베였던 삶
결국
그토록 괴로움에 잊지 못했던 계부로부터
이혼이라는 명목하에
어머니를 독립시킨다.
그토록 고생하였던 어머니를 호강시키고자
첫 단추를 꿰었지만
결국 이 단추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치매가 찾아오고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급기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머니 접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아무리 불러봐도 자식을 알아보지를 못한다.
"오빠 아인교?"
이 외침이 아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토록 호강시키려 했던 엄마...
그토록 잘 키우려 했던 아들...
이 둘의 만남은
중증치매와 악성 뇌종양으로 만난다.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슬픔의 눈물조차도 흘리지 못하는 만남
이 삶의 무게는
과연 가볍다고 해야 하나
무겁다고 해야 할까?
죽음이 끝이라면
너무도 안타까운 둘의 여정은
아직은 종착역이 아닌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가볍든지 무거웠든지 간에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일지라도
영원한 삶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기에
우리는 희망으로 이 모든 일을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이다.
고인의 삶을 마주 대하며
슬픔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쁨과 희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죽음은 그렇게 볼 일이다.
삶은 그렇게 바라볼 일이다.
마지막이 아니기에
엄마와 아들의 이별은 잠순간 일뿐이다.
죽음이 끝이 아닌 삶
단지 죽음은
영원을 보장하기 위해 진행 중인 삶이라면
그러한 삶을 선택하지 아니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